::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DNA 가졌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D NA 가졌다고 확신하는가? 어떻게?

*1:12<영접하는 ,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한 사람들의 신분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어두움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 바뀌고,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신분상의 변환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자녀로 돌아 있는가? 없다. 신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우리의 DNA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영접은 모셔 들이는 일지요.

3:20<볼지어다 내가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영접이란 마음의 문을 열고서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 분을 안으로 모셔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밖에 서서 마음의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빗장은 밖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안쪽에 달려 있습니다. 빗장을 여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일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결단과 의지로 문을 열어 주기를 바라지요.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여시면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 오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영주하기 위하여 그렇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인생에 예수님을 어떤 자격으로 모셔 드리는 일일까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셔 들이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됩니다.

 

예수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구원을 결정합니다.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 볼까요?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그저 목수의 아들(13:55) 사람도 있었고, 귀신 들린 (12:24,3:22) 사람도 있었고, 먹기를 탐하는 (11:19), 먹보로, 또한 마시기를 좋아하는 , 주정뱅이로 자도 있었고, 기적을 일으키는 (빵의 구주) 자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런 관점은 육신적인 관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적인 관점, 육신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봅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예수는 나의 구주일 뿐만 아니라 나의 주님도 되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되,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의 구주와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a. 구주라고 번역된 말은 그릭으로는 소텔(swthvr )인데, 초대 교회가 우리 주님 예수께 붙이기 시작한 타이틀입니다. 소텔이라는 의미는 예수는 구원자, 예수는 구주, 예수는 우리를 , 죽음, 심판에서 건지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구약 성경에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자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45:15<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러던 이런 고귀한 타이틀을 초대교회가 우리 주님 예수께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5:31<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그는 누구?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나 3일째 되는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다시 살아나신 몸으로 올라 가신 분이십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임금이며 그가 이스라엘의 구주, 이스라엘의 구원자 이십니다.

 

13:23<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예수라> 직전 문맥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입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구원자 구주입니다.

 

사도 행전 5장이나 13장에는 기독교가 등장하는데 원시 기독교, 초기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3-4세기 경의 기독교에서 비로소 형성된 개념이 아니고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초기 기독교에서 회자 되었던 예수님의 타이틀입니다. 구주라는 타이틀은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애용했던 예수님의 타이틀입니다.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세상을 향하여 예수께서 세상을 건지시는 구주,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들이 신앙고백을 때에 무슨 상징을 사용했습니까? 초대 교회는 물고기 표시를 하면서 자신들이 예수의 제자임을 나타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무슨 상징을 사용합니까?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십자가 신앙-예수께서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에 대한 신앙고백이 십자가이지요. 십자가를 예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원시 초대 교회 때에는 신앙고백을 물고기를 가지고 표현했습니다. 물고기가 그들의 신앙고백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을까요? 예수의 제자들이 갈릴리 어부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상징을 사용했나요?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톱이나 망치나 대패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상징하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니 말입니다. 초대 교회가 물고기를 신앙고백으로 사용한 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의 내용이 물고기였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라는 헬라어가 익두스입니다. IXOvS! 이것은 또한 두문자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첫글자를 따서 단어를 만들어 보니 그게 물고기가 되지 뭡니까? 그래서 물고기를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사용했습니다. 물고기라는 글자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한 구원자 구주라는 말입니다. 훌륭한 신앙고백입니다.

 

b. 예수님께 붙여진 주님이라는 타이틀은 무엇입니까?

우리 나라 말로는 주님으로 번역되었는데, 그릭으로는 큐리어스(kuvrio")입니다.  영어로는 the Lord이지요.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분이 큐리어스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로 여호와 혹은 야훼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나 거룩했기 때문에 입으로 발음을 하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명을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대체하는 이름인 아도나이,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가 바로 그릭으로는 큐리어스입니다. 구약의 성부 하나님께 붙여지는 칭호인 주를 신약 시대에는 예수께 붙이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예수께 붙여준 주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격이 되는 타이틀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영광과 권위가 모두 예수께로 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는 우리들처럼 육신을 입고 있지만, 우리들과는 달리 신성을 가지고 있는 완전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이것을 우리가 받아 들일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가운데 있게 것입니다.

8: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가운데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가운데서 죽으리라> 내가 그라는 말이 무슨 말이지요?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죄사함이 있을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위에 계시던 때에도 우리 주님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구주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1:12<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과거에 예수를 한번 영접함으로 되는가? 그렇다. 영접하고 후에 세상으로 내려가서 배교와 타락의 삶을 살아도 영접은 유효한 것인가? 영접은 유효한 영접이 못됩니다.

영접은 일생에 한번(단순과거) 일어난다. 그러나 이름을 믿는 (현재분사) 믿음이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신앙을 의미한다. 과거에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했음을 자신이 주장하더라도 현재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가 했던 과거의 영접은 진실한 영접이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현재의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하고 있는 것을 때에 과거에 한번의 영접이 올바르고 진실되고 확실한 영접이 이었다고 말할 있다. 영접이라는 행위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현재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 속에 살아가는 것은 옛날에 있었던 영접이 참되었음을 나타내 주는 표식이고 지표입니다.  번의 진실된 영접이 있었다면 우리의 마음에 우리 주님이 들어 오시는데, 들어 오시면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자기들의 시대에 신앙 때문에 환란과 고난과 시련이 컸기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는 배교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배교자들에게 대하여 이런 경고의 말씀을 히브리서에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6:5-6<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환란과 고난이 싫어서 믿고 있는 예수를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 간다면 행동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박는 용서할 없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믿다가 예수를 버리고 사람들에게는 다시 속죄의 길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다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박혀야 하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다시 십자가 지는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야들 예수를 메시야로 받기를 거절하고 집단적으로 저들은 예수를 거부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됨과 자녀됨의 권리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집단적인 거부 가운데서도 몇몇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예수님을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게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를 주와 구주로 고백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가 크리스챤 공동체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공동체를 종말의 날에 창조해 주셨습니다. 우리 켐연장 교회도 우리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하나님이 우리들을 낳았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DNA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1:18<그가(하나님이) 피조물 중에 우리로(1세기의 제자들을)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lovgw/ ajlhqeiva"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ajpekuvhsen >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았기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DNA 가진 자들이다. 무엇으로 우리를 낳았다고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이 진리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전파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마음에 받아 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결코 인간적인 출생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없습니다. 요한 복음 1:12-13<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13 초반부에 보이는 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왜냐하면이라는 부사인가? 아니지요. 관계 대명사입니다. 선행사가 무엇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 그들은 인간적인 액션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출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문입니다. 인간적인 출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 없고, 하나님의 DNA 가질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은 하나님에 의한 완전 새로운 창조입니다. 우리들은 것을 수리하거나 개조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이 아닙니다. 중생은 human generation 아니라 divine generation이다.

 


섬김이1

2018.09.23 21:21:36

2018년 9월 21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921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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