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요즈음의 화두가 무엇입니까? 더위! 불볕더위! 한증막,열대야! 이런 단어들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그런 날씨입니다. 8 달간 지속된다고 하네요. 더운 것은 참고 이겨 내면 되는데, 다음이 문제입니다. 반도의 경우에는 비가 와서 작물들이 모두 말라 죽어 가는 것이 문제이지요.

이곳 보스톤은 덥다 해도 한국에 비하면 선선합니다.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지옥에는 결코 가서는 안되겠구나! 그리고 한가지 여기가 그래도 지옥보다는 선선한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내면 더위를 이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당신의 삶의 목표는 확고한가? 삶의 목표가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흔들리면 우리의 삶이 방황하게 되면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유명한 수영선수를 아시는지요? 영국해협을 왕복한 최초의 여성으로서 이름 있는 여인입니다. 1952 7 4 미국독립기념일에 채드윅은 캘리포니아 해안으로부터 35킬로미터 떨어진 카타리나 섬에서 켈리포니아 해안까지의 수영에 도전했습니다. 무려 16시간이나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쉬지 않고 수영해야 하는 초인적인 한계에 도전한 수영입니다. 상어 떼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양편의 구조선을 제외하면 혼자서 외로이 태평양을 16시간이나 헤엄쳐야 합니다.
미국 TV 전국에 광경을 방영했습니다. 그리고 도착 시간을 전후해서 수많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해변가에 와서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6시간이나 계속된 수영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던 플로렌스는 사력을 다했지만 자기 힘이 점점 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권을 하고 자기를 따라오던 구조선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기권하고 배로 육지에 도달하고 보니까 안개 때문에 보았던 거리가 불과 육지에서 500미터도 되는 거리였던 것이었습니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풀로렌스는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추위 때문도 아니었다.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사실은 안개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안개 때문에 제가 목표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표 지점을 있었다면 저는 어찌해서든 도착했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안개로 인해 카타리나 섬에서 LA까지 수영으로 횡단하다 실패한 플로렌스 채드윅은 , 9/4일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바닷물은 처음 시도했을 보다 차가웠다. 그리고 번째 도전하던 안개는 짙게 끼었습니다. 해변 전체를 안개가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보다 휠씬 악조건 속에서 플로렌스는 번째 시도에 성공했습니다.

 

기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이번에는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때 플로렌스는 매우 의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에 목표가 보였습니다. 그녀는 안개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눈으로 이미 도달해야 캘리포니아 해변의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비전!

 

지금 자리에 앉아 자신의 목표를 적어보십시오! 10 , 20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 정복하고 싶은 목표를 마음에서 끌어내어 적어 놓고 기도하며 발을 뛰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판매 왕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고등학교 중퇴자였지만, 실패할 때마다 책상에 앉아 자신의 목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방문판매를 통해 매월 1000불을 번다 전부였습니다. 아주 작은 목표였지만,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마음속에 목표를 다짐할 목표를 정복할 있었습니다.
그는 30대에 앨버타 대학에 입학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콜롬비아 퍼시픽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4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연간 매출 2 65백만 달러짜리 인적 자원 개발 회사 브라이언 트레이시 인터내셔널의 회장이자 인기 있는 저술가가 되었습니다. 목표의식은 삶의 엔진과 같습니다. 엔진이 없이는 1m 전진할 없듯이, 삶의 구체적인 목표가 없으면 삶의 전진이 없습니다.

신앙의 인물 가운데 사도 바울은 목표 의식이 분명한 사도였습니다. 그가 탁월한 삶을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학위나, 경력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의식에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바울의 lifestyle 결국 바울을 사도다운 사도로 성숙시켰습니다.

 

3:13-14/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2:2 상반절/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성도의 신앙 생활은 장거리 달리기인데, 고울인 지점을 응시하면서 달려 가야 무너지지 않지요. 에수를 바라보고 달려 갑시다.

 

2. 벧전 2:4-5<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전과 성전 돌들:기초석(예수 그리스도)+돌들(하늘 위에 있는 성도들과 위에 있는 성도들):성전을 이루고 있다.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이미저리를 사용해서 예수와 우리와의 관계를 정립해 주고 있습니다.

*연합의 비유/

15-포도나무와 가지;        

고전12-지체 비유;                 

2(사도바울)벧전2(사도 베드로)-성전비유

Thomas Merton 영성신학자/우리는 홀로(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라, 대륙과 연결된 섬이다./연합을  강조하는

 

*성전:신령한 oi\ko" pneumatiko;"! 하나님의 :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 구약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이해 되었습니다. 성전은 거룩하고 신령한 집입니다.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적으로 거대한 , 기초석(수십 나가는 하나의 ) 위에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돌집입니다, 석조전입니다.

*이런 성전 이미저리(그림 언어) 사용해서 우리의 id: ()! wJ" livqoi zw'nte"!  살아 있는 돌들!

 

세상은 무엇일까?  당신의 세상관? 당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무엇인가?

세상은 우리 하나님이 나를 성전 돌로 꼽아 넣기 위하여 나를 훈련 하는 장소(훈련소)라고 있다.

 

왕상6:7<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기초 ( /영어로는 coner stone이라고 부름) 놓이고 위에 정교하게 다듬은 작은 돌을 켜켜이 쌓아서 석조 건물로 지었다. 성전을 지을 때에 성전 건물에 쓰일 돌들은 채석장에서 뜨고  끌과 정으로 다듬은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겨 와서 조립식으로 맞추어 넣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돌로 조립식 건축물!

성전 구내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의미가 무엇인가? 세상 속에서 내가 처한 현장은 하나님이 영혼을 갈고 다듬는 곳이다   

 

참고:

솔로몬 성전- 1성전(주전959 왕상6:1-38)

스룹바벨 성전. - 2성전(주전 516년경 완공BC.516; 6:15-18).

1 성전 건축할 때에 솔로몬과 두로 히람이 계약을 맺는다(왕상5:12). 솔로몬은 히람에게 곡물과 기름(감람) 매년 보내고, 히람은 백향목과 대리석 돌을 솔로몬에게 보내는 조건/ 왕상 5:17-18 참조

2 성전은 주후 1세기에 헤롯 가문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을 확장해 나갔는데, A.D.63년경에 확장 공사를 마쳤다.  7년이 지난 AD. 70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하여 2 성전도 불타 없어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유대라는 나라가 멸망하는 때이다. 유대인은 성전이 사라진 후에 나라 없는 족속으로 세상에서 diaspora로서 살다가 1948년에 나라를 재건했다:이스라엘!  .

현재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 무슬림 사원(Dome) 세워져 있다. 유대인들 가운데 다시 성전을 자리에 세우기 위하여 은밀히 준비하고 있다. 성전을 3 성전이라고 부른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연합에 대한 비유:성전과 성전돌! 벧전 2:4-8(2:20-22)- 구약 성전은 기초석 위에 돌들이 놓여져서 석조 건물을 이루고 있다. 베드로는 기초석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전의 하나 하나의 돌들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라고 적용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택함을 입은 보배로운 돌이고, 우리들도 같아서 신령한 (spiritual house/성전, 상징적인 )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하나 하나가 성전을 이루어 가는데 요긴한 돌이다. 만약 성전돌들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성전이 완공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돌들을 얻었는가? 세상에서! 세상 속에서 선택했고, 훈련시켰다. 석수장이가 끌을 가지고 돌을 쪼아서 돌을 준비했고, 그것을 성전에서 조립함으로써 성전을 완공했다. 하나님은 석수장이!

소리 내지 않고 지어진 성전! 세상은 우리들이 성전의 돌이 되게끔 하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석수쟁이 모양으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쪼아서 성전의 되게끔 합당하게 만들어 가시는 곳이다.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끌과 정으로 쪼아 때에 아프다고 불평하지 말고 성전돌로서의 영광된 미래를 바라보고 아픔을 참아 내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하나님이 나를 빚어 가시는 의도가 있는 자리다! 환경과 조건이 나쁘다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라! 내게 있는 약점과 어두움까지도 하나님이 사용해서 성전 돌로 다듬어 가신다. 성전 돌로 쓰시기 위하여 깎여지는 아픔을 참아내라!

 

*성전의 목적이 무엇일까?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이다. 성전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다. 신약의 교회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다.

2:20-22<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예수 믿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눈에 보이는 건물에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예수를 기초 석에 두고, 성도들이 하나 하나의 돌로 비유되는 성전 예수의 공동체(신약시대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스데반의 설교(7:46-50 참조)-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 안에 거하시지 아니한다.  이것이 스데반 설교의 핵심이다. 이것 때문에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예수께서도 요한 복음 2장에서 성전의 파멸을 예언하셨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 자신의 몸을 가리키심) 세울 것을 성전 청결 사건을 일으키실 때에 언급하셨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로 세우신 교회는 미완성 공동체! 지금도 under  construction! 언제까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는 성장해 나가야 한다.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만약 성장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베드로전서에서 인용한 구약 성경-이사야28:16, 118:22

벧전 2:6절은 28:16 인용인데 여기서는 기초석(, 무사드) 의미하고, 벧전 2:7절은 118:22절의 인용인데, 이것은 관석(: 로쉬 피나, cap stone) 가리킨다.

예수를 기초석(28:16)이라고 때에는 coner stone(기초석/주춧돌) 가리키기도 하며, 또한 cap stone(관석, 기둥 위에 두는 ) 가리키기도 한다.


남상민

2018.08.08 07:10:11

2018년 8월 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8032018.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2 금요기도회(12/14/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7 2501
561 금요기도회(12/7/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2154
560 금요기도회(11/30/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865
559 금요기도회(11/23/2018) [1] 김영호목사 2018-11-26 477
558 금요기도회(11/16/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9 1168
557 금요기도회(11/9/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2 465
556 금요기도회(10/26/2018) [1] 김영호목사 2018-10-28 471
555 금요기도회(10/12/2018) [1] 김영호목사 2018-10-14 485
554 금요기도회(10/5/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7 478
553 금요기도회(9/28/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1 582
552 금요기도회(9/2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23 598
551 금요기도회(9/14/2018) [1] 김영호목사 2018-09-17 479
550 금요기도회(9/7/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9 489
549 금요기도회(8/3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3 488
548 금요기도회(8/24/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7 483
547 금요기도회(8/17/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0 553
546 금요기도회(8/10/2018) [1] 김영호목사 2018-08-13 480
» 금요기도회(8/3/2018) [1] 김영호목사 2018-08-06 507
544 금요기도회(06/01/2018) [1] 김영호목사 2018-06-13 620
543 금요기도회(05/18/2018) [1] 김영호목사 2018-05-22 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