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제목: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본문:말4:4-6 

일시:12/31/2016 

대상:ckpc


I. 서 론 2016년도 시작이 어제와 같았는데, 벌써 365일이 지났고, 2017년도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2016년도에는 참 이변이 많이 일어난 한 해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국제적인 대형 사건들이 우리의 삶과는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마치 쓰나미처럼 우리들에게 덮치기 때문에 그 사건들을 주의해서 살피고 대비하는 것은 중요하지요.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사건들로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가 있었고, 중국이 ‘일대일로’의 기치를 내걸고 남중국해에서 패권을 과시하고 있는 가하면, 미국 땅에서는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 된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떠나온 한 반도, 우리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한국 땅에는 2016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직 중인 대통령이 뇌물죄로 특검 수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고, 또한 헌정 질서 파괴자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 되어서 헌법 재판소의 인용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순실 씨에 의한 미르.K스포츠 재단의 권력형 비리는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 지면서 백성들이 촛불을 들게 되고 바야흐로 국회는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연일 메스컴에 발표되는 이야기들은 우리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온 한국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부정과 불법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법을 지키면서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받고 법의 약점을 피해가면서 부정직하게 이득을 얻는 사람이 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듣습니다. 


이 시점에 한국 땅에 있는 교회들은 바로 서 있는 지를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해 있더라도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바로만 감당해 주면 사회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화 되어 지겠지요. 우리 한국 사회가 타락한 만큼 교회도 덩달아 영성이 후퇴하여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치부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런 어두움 때문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회 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 가득한 물질만능주의가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도 들어 오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대형 교회의 성직자들의 비리가 연일 이방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런 처참한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영성이 바닥을 치고 있으니 교세는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 교회 안에 젊은 이들과 교회 안에 아동부가 현격하게 줄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캄캄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2017년도를 맞았습니다. 우리 켐연장 교회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사명을 가지고 2017년도 한해 동안 살아가야 합니까? 2017년 한해 동안 우리들은 어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까? 구약 성경의 맨 마지막 구절을 우리 하나님이 2017년 동안 살아 가라고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겠습니다. 


II. 말4: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한다는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또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자녀라는 단어가 보인다고 하여서 이것을 개별 가정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아버지와 자녀에 대한 단어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라는 것은 가정의 가정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 혹은 족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란 말라기 시대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는 조상들의 경건한 영성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다시 살아 나고, 회복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언자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믿음의 조상들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성이 퇴락하고, 그들의 삶이 바닥을 칠 정도로 무너져 있지만, 그들의 영성이 다시금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성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말라기 시대는 주전 4-5세기 경의 예언자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해방 된지 벌써 1세기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 한 후에 스룹바벨이 주도하에 학개와 스가랴 예언자의 도움으로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만국의 보화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고 예전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학개 2장에는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는 예언이 적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막 돌아온 상태이기에 성전을 다시 건축할 만한 여건이 못 되었지만 학개의 고무적인 예언을 듣고 온 힘을 내어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성전은 재건 되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학개의 예언한 내용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신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면 신앙의 열정이 사라지게 되지요. 그러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형식적으로 드려 지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안 드리면 마음이 영 찜찜하고 불편하게 되고, 제사를 드리자니 소와 양을 사서 드려야 하는데 손해 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는 소와 양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이쁜 놈을 골라서 드려야 하는데, 신앙에 대한 열정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소떼와 양떼 가운데서 병들어서 골골 하는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성전 예배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예언자가 말라기 1장에서 신앙의 열정을 잃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그러면 제사장들은 어땠을까요? 제사장들도 타락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12개의 떡을 바쳤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하나님께 직전 안식일에 드렸던 12개의 떡을 성전에서 물려 내 오고, 새로 만든12개의 떡을 드렸습니다. 매 주일마다 제사장은 12개의 떡, 진설병을 상에 올려 드려야 했습니다. 그 떡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방식대로 드려야 하는데, 종교 의식적으로 더러운 떡을 드렸습니다. 말라기는 이러한 제사장들의 행태에 대하여 여호와의 식탁을 더럽히고 있다고 책망했습니다.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모두 하나님을 잘 섬겨야 겠다는 열망과 열심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나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선택을 할 때면 언제나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 가를 제일 먼저 생각하면서 선택했습니다. 신 6:4절 말씀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의 신앙고백이었고 영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말라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은 이런 조상들의 순수한 영성에서 많이 벗어난 길에 서 있었습니다. 말라기 예언자는 조상들의 영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다시 회복되는 운동이 일어나야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성은 어떻습니까? 과연 옛날의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영성을 가지고 우리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들의 시대는 점점 더 영적으로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활활 타올라야 할 성령의 불이 사위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있어야 할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청년들과 어린 세대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예배와 기도와 이웃을 섬기는 일들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젊은이들이 세상 재미를 찾아서 세상으로 내려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는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3번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 놓이는 것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내 인생에 1번이고, 그 다음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내 인생에 두 번째 일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하나님 섬기는 일입니다. 언제나 내 인생에서는 하나님이 3등입니다. 시간이 나면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여유 돈이 있으면 조금 헌금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명하셨건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드뭅니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믿음을 전수해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에 priority넘버 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던 시절에 하나님을 인생의 첫 번째에 두고 생활하면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를 이루어 우리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풍요를 누리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우리들의 조상들의 영성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조선 시대 말기와 그리고 일제 치하를 지나면서 존경 받아 마땅한 믿음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일제 신사 참배를 반대하면서 깨끗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시대에서 그리 멀러 떨어져 있습니다. 불과 두 세대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은 옥중에서 순교했고, 그 외 다른 분들은 옥중에서 고난을 견디고 있다가 해방과 함께 출옥한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믿음의 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가진 순순한 믿음과 열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들과 같은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저는 어떤 장로님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장로님은 장마철에 비 때문에 교회의 기와 지붕 낡아서 빗물이 예배 당 안으로 떨어지자 자기 집의 기왓장을 벗겨서 교회 지붕을 덮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을 priority no 1에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회복되어야 할 것은 한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영성이 무너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정도 무너지고 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말라기 2장에는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딸을 아내로 며느리로 맞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정실 부인에게 거짓을 행하고 부인을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자기의 아내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면서 아내를 버리기 까지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니, 그 가정의 자녀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가정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쌓이겠습니까? 상처가 쌓이지 않겠습니까? 부모에 대한 미음도 들 것이고, 이런 미움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낳는 것 아니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기는 한데,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불행한 아이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여, 육신의 어머니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고 믿어 지게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건강한 가정이 자존감이 높은 건강한 자녀를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2016년 5월 달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이 도벽이 있었습니다. 딸의 도벽을 사탄의 탓이라면서 5시간 동안 아버지라는 분이 딸에게 매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새 엄마는 딸이 달아나지 못하게 옷을 벗기고 문을 막아 섰습니다. 5시간이나 얻어 맞은 어린 딸을 추운 방에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다음날 딸은 시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활의 기적을 바라는 아버지라는 양반은 딸의 시신을 11개월간 집 안에 두었습니다. 시신에서 벌레가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딸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알았다지요. 재판장은 그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피고인 당신은 인간인가요? 당신은 인간이 맞나요? 이 아버지가 누구였을까요? 교회를 섬기는 목사요, 그것도 독일 유학까지 마친 신학 대학교 강사였습니다.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말입니다. 어떤 엄마가 개구장이 두 아들을 데리고 지하철에 올라 탔습니다. 두 아들들이 지하철에서 통제가 안되게 시끄럽게 굴었습니다. 이 때 엄마가 두 아이들에게 눈에 힘을 주면서 엄마가 어떤 사람을 가장 싫어 하는 지 알지 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데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를 가장 싫어 한다는 대답을 듣기를 원했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아빠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는 안 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릴 때에 이삭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결박을 당하고 제단 위에 놓여 있지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칼을 들고 아버지가 이삭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절대 순종했기 때문에 그 아들 이삭이 그의 아비인 아브라함에게 절대 순종했습니다. 현대인의 가정에서 이삭의 절반 만큼이나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버지에게 순종한다면 이 사회의 문제점이 해결되고도 남겠지요. 


III. 말을 맺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 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보다 앞선 시대의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했는지를 찾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영성이 우리의 삶에서 다시 회복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은 priority no 1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영성이 살아 나면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 32장 15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라고 하는 탄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한가지 더 회복되어야 하는 것-그것은 가정의 회복입니다. 이것은 교회 전체가 영성을 회복하는 것 만큼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신앙을 회복하여서 가정에서 그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아이들이 교회에서는 1주일에 1시간 정도 신앙 교육이 전부입니다. 신앙 교육은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야 합니까? 가정에서 부모에 의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받은 우리의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는 그 신앙을 점검하는 정도가 되면 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교육을 안하고 교회에 그 큰 일을 맡긴다면 교회가 그 일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삶을 통하여 보여주고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켐연장 교회 뿐만 아니라 뉴잉글랜드에 있는 교회들과 한반도 있는 우리 조국 교회와 그리고 온 세계 교회 안에 다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회복시키시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켐연장

2017.01.05 12:15:08

2016-2017년 송구영신 예배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1012017_NewYearDay.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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