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오늘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마가복음 8:1-10까지를 읽어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거의 비슷한 사건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칠병이어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거의 비슷한 기적을 두 차례나 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기적을 두 차례에 걸쳐 행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짤막한 항해라고 도시락 챙겨 가지고 가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랬을 때 16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고 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야! 우리가 양식 챙겨 가지고 타지 않아서 큰일 났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 또다시 떡으로 인해 걱정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두 차례의 현장에 제자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 두 가지 기적의 공통점의 명백한 교훈은 주님이 우리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제의 해결자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또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만 그렇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1년 전, 2년 전 내가 역경에 처했을 때 부르짖었더니 내 기도에 응답하시고 나를 고통에서 건져 내셨던 놀라우신 그 주님. 주님은 내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역경,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는 나는 또다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떡하지? 오늘 나는 이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 하십니까? 17절입니다. 너희들 떡 때문에 걱정하는 구나. 아직도 내가 너희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자요 구세주요 그리고 주님이라는 사실을 너희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 하느냐? 그러면서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원인, 두 번씩이나 기적을 경험하고도 아직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그들이 환경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지적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15절에서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 여기서 누룩 얘기를 할까요? 누룩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영향력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빨리 퍼지는 것. 이것을 예수님은 누룩으로 상징하고자 의도하셨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주로 누룩은 나쁜 영향력의 상징으로 많이 쓰여 집니다. 좋은 영향력의 상징으로 쓰여진 예도 성경에 있습니다만 더 많은 경우에 누룩은 나쁜 영향력의 확산을 의미할 때 상징적으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꿔야 할 사람들 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거꾸로 세상에 의해서 오히려 영향을 받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혹은 비슷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며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향이 있었기에 그럴까요?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영향을 지적하십니다.

  첫째, 바리새인의 영향입니다. 그것을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1에 보시면 우리는 바리새적 누룩의 정체, 그 영향의 정체를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외식이란 것은 겉만 꾸미는 것. 안으로 내용에 대한 관심, 그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채우지 못한 채 바깥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 이것이 바리새 주의의 특성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전통적으로 그들은 전통을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있어서 주님을 실망시키고 있었던 오류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종교의 형식, 틀을 갖추는 데는 열심이 있었지만 내용을 갖추는데 열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바리새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따라서 어느 정도의 찬송과 기도에는 익숙해졌지만 아직까지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희가 바리새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신앙의 형식과 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신앙의 삶을 형성하는 진지한 삶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너희들이여,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둘째,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헤롯의 누룩. 우리가 본문을 마16:6하고 비교해 보시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두개인과 헤롯. 왜 이 차이가 났을까요? 사실상 헤롯과 사두개인은 한 통속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헤롯은 로마로부터 임명을 받아서 그 당시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고 있던 왕이었습니다. 헤롯 가문에게 공통된 점이 하나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것이 헤롯 왕가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물론 이 세금의 상당한 부분은 헤롯 왕가가 그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을 했습니다. 철저하게 헤롯 왕가의 스타일이 무엇이냐면 그것은 세속주의 혹은 물질주의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었던 또 하나의 종교 계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두개인들입니다. 주로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치적으로 로마와 결탁해서 친 로마적인 삶을 살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들은 헤롯 왕가와 어울렸습니다. 그들은 종교인이면서도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배했던 중요한 관심은 돈이었습니다. 바리새주의가 형식주의, 외식주의를 대표한다면 바로 헤롯주의 혹은 사두개주의는 세속주의,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물질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이 헤롯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영향을 주기는커녕 그들이 오히려 물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제자들의 신앙은 자라나지 못하고 그들은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눈이 멀어 버린 원인, 그들의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물질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자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증거를 볼 수가 있는데요. 15절에서 예수님이 유명한 이 경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었을 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이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16절 봅시다. 동문서답이에요.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는데 누룩 소리가 나오니까 제자들은 얼른 마음속에서 무얼 떠올렸어요? 떡입니다. 떡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누룩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에 아 예수님도 떡 이야기하시는 구나. 물질은 필요합니다. 성경은 물질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우리의 숭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예수 믿으니깐 축복 받는다더라, 물질적인 축복. 신앙의 유일한 동기가 물질의 축복이 되어 있는 사람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으면 축복도 받아요. 그러나 그것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보다 위대한 꿈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삼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내 인생이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이 더 높은 비전과 자존심 그리고 더 높은 기쁨 때문에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이 물질 앞에 굴복하고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이 물질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 제자들의 모습. 주님의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8절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 하느냐. 제자들이 보아야 할 것은 주님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 이 계셨습니다. 그는 누구이십니까? 창조자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칠병이어의 현장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던 놀라우신 주님이십니다. 그 분이 지금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보지 못하고 떡을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내 눈이 열려 살아계신 주님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씀하시면 천지는 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가 말씀하시면 세상은 새로워 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오직예수로 살아가시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뭐가 걱정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 구세주요 주님이신 그 분, 전능하신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뭐가 걱정입니까?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분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새로워 질 것입니다. 피할 길은 생길 것입니다. 홍해 바다는 열릴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예수님 그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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