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오늘 본문 말씀은 화 있을 진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세 개의 연으로 나누어 집니다. 18-20일 첫 번째 연이고, 21-24절이 두 번째 연이고 25-27절이 세 번째 연입니다.

첫 연은 여호와의 날을 다루고 있습니다. 짧은 석 절 안에 여호와의 날이라는 용어가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악인에게는 어두움의 날이요 의인에게는 빛과 구원의 날입니다. 회중들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회중들이 악인이기 때문에 18절에 기록되어 있는데로 여호와의 날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여호와의 날이 어두움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이해가 회중들이나 아모스에게 있어서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모스는 회중들을 악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반하여 회중들은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보고 있는 점이 달랐습니다. 19절에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날에 당할 재난을 비유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재앙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둘 째 연은 잘못된 제사와 잘못된 예배에 대하여 아모스는 비아냥 거리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의할 것 같으면 절기를 사랑하시고, 또한 집회(성회)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성소에게 드려는 제사에 대하여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절기와 ㅎ성회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절기를 지키러 온 사람들이 악인이요 포악한 사람들이요 우상 숭배자들이이기 때문입니다. 22절에는 번제와 소제가 그리고 화목제의 희생 제물이 성소에서 드려 질 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소에서 값진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연기를 왜 하나님이 마다 한답니까? 그들이 제사를 드리면서 제물의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낼 때에 자신의 죄악과 탐욕도 함께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마음의 죄악들은 그대로 나둔채로 제물의 연기만 올라 가니 우리 하나님께서 역겹다고 말씀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종교적인 행사에 불과합니다. 또한 제사 드리는 현장에서 각종 악기를 사용하여서 찬양을 드립니다. 그 찬양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찬양이 되어야 하는데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찬양을 하고 있습니까? 예배자 자신을 기쁘게 할려고 찬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는 무엇입니까? 24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참예배는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일입니다. 공의와 정의는 사회 정의를 가리킵니다. 성소에서 드리는 제사가 제사 답게 하나님께 드려 지기 위해서는 삶의 현장에서 공의와 정의를 실천했을 때에 되어 지는 일입니다. 사회에서 착취와 억압과 폭력과 뇌물을 주고 받는 삶을 살다가 성소에 와서 최고의 제물을 드려서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 것 아닙니다. 법조계에도 정치계에도 재계에도 시장 바닥에서도 거리 거리마다 하나님의 정의가 폭포수처럼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 갈 때에 교회에 모여서 예배 순서를 따라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세 번째 연도 이스라엘이 드리는 예배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는 앗수르로부터 수임한 우상을 예배에 도입하게 되니 자연히 예배는 혼합주의 양상을 띄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나 신앙에 여타 종교의 교리와 영성을 섞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와 예배는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의진목사

2014.10.27 18:56:04

10/26/14 주일 예배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4/1026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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