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첫째로,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선교는 레져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조항입니다. 이웃의 영혼이 죽어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데도 전혀 안타까움이나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적인 무관심이라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병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죄입니다. 영적인 무관심은 나에게 큰 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둘째로, 전도가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라면, 반드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제시되어 있습니다. 본문 22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교제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을 구원해내기 위하여 그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처럼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따라 사는 유대주의자들을 만날 때에는 율법 아래 살아가는 유대인들처럼 되었습니다. 또한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을 만날 때에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처럼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웃과 관계가 맺어지게 될 때 결정타를 날리십시요. 이웃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전도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때가 무르익게 되었을 때에, 이웃의 마음이 감동으로 열려졌을 때에 말로 우리의 입술로, 그리고 구체적인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십시요. 복음 선포가 없이 그냥 이웃 속에 들어가서 산다면 좋은 사람으로서 칭찬은 들을지 모르나 이웃의 영혼을 구원해 내는 데는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영적인 카멜레온이 되어야겠습니다.

셋째로,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낮추어 가면서 복음을 이웃에게 전할 때에 그가 마음 속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요? 그는 오늘 본문 23절에서,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 모든 권리와 모든 자유를 포기하면서도 원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복음에 참예함이라고 두리 뭉실하게 표현 했는데, 이 말의 정확한 뜻은 복음이 가져다 주는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지고자 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나누어 가지면 가질 수록 복음이 가져다 주는 기쁨은 커집니다. 이것은 세상 논리와는 정반대입니다. 세상 논리로는 내가 독점적으로 소유하던 것을 이웃과 나누어 가지면 그 만큼 적어집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내가 소유하고 있던 복음을 더 많은 이웃에게 나누어주면 줄 수록 내가 소유한 영적인 생명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영적인 원리는 세상적인 논리와는 정반대입니다. 내가 가진 복음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게 되면 내 안에 있는 생명이 배가되며. 내 안에 있는 자유가 배가 되며 또한 우리 주님이 복음 때문에 주신 기쁨이 배가 됩니다. 그러기에 복음 전도자들이 주의 명령 받들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먼 곳으로 가면 갈 수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복음을 나누어 가지면 가질 수록 우리가 가진 복음이 우리들에게 주는 혜택은 커집니다. 영적인 구두쇠가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전의진목사

2015.02.10 04:41:46

02/08/15 주일 예배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208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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