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뻐 노래하면서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기쁨으로 창조의 하나님을 노래했지만, 신약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과 죄사함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속죄의 기쁨은 새 노래입니다. 십자가 이전의 성도들이 결코 누려보지 못한 체험입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보혈이 우리의 죄악을 씻어서 맑히는 그것을 체험해 보니깐 심령 속에서부터 예수의 보혈에 대한 찬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새노래, 새찬송이 구원받은 새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를 노래입니다. 우리를 구원키 위하여 몸버려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구약의 성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백성들보다 강한 세상, 그들을 적대시하는 세상은 여전히 그들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17절 말씀이 해답입니다: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두려움 없이 한 세상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랑을 체험해 보십시요. 그러면 내 안에 있는 모든 세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들이 추방될 것입니다. 온갖 세상두려움들이 우리들의 영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과 삶에 부어질 때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4:17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나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세째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우리들이 죄 때문에 깨어지고 부서지고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 구원이다라는 말이지요. 구원을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도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19절에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자들, 쫓겨 간 자들을 불러 모으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0절에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로잡힘을 돌이키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포로들, 유다의 디아스포라들을 회복시켜서 그들을 높이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지키는 자가 되어야 우리의 심령이 회복됩니다.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기고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 천국에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남은자들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12162018.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