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기다림의 신앙(사 64:1-9)


오늘 본문 말씀은 억압과 고통의 삶의 자리에서 두 가지의 큰 간구가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간구가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친히 강림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상 반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원하건데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을 쫙 가르시고, 땅에 내려와 달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땅에 강림한다는 것은 실상은 예언입니다. 이 예언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요단강가에서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수면 아래로 물 속에 머리가 잠겼다가 수면 위로 올라 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주님 머리 위에 강림하심을 보셨습니다. 예, 바로 요단 강가에서 우리 주님 예수께 일어났던 그 사건에 대한 예언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대로 우리 주님 예수께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임하시므로 우리 주님 예수께서 구원사를 이루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지요. 하늘에 오르시면서 창설하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죄 용서에 대한 청구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죄 고백 되어지는 곳에 당연히 죄 용서에 대한 청구가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들어 있게 마련이지요. 유대의 백성이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들 나름대로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었다고 생각하는 의는 6절에 의할 것 같으면 더러운 옷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하는 탄식은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는 구약의 백성들 만의 탄식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탄식이기도 합니다. 죽음과 죄악과 어두움과 슬픔과 아픔이 가득 차 있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자랑할 만한 의로움이 있습니까? 지금 죽어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리라는 자신감 넘치는 의로움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 우리는 확실하게 그런 의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3-34절에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는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그를 믿으면 지은 죄가 많아도 두려움 없이 예수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하늘을 가르시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 됨을 고백했더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가 새롭게 되어집니다. 8-9절에 의할 것 같으면 죄씻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감히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아닙니까?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모두 주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언제 말입니까? 8절 말씀 초두에는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되었음을 인정하고 고백했을 때가 아니던가요?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라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켐연장

2017.12.06 10:30:28

2017년 12월 3일 주일예배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2032017.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7 때가 되매(갈4:4-7) [2] 김영호목사 2018-01-01 235
646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8-20) [1] 김영호목사 2017-12-25 235
645 당신의 상처는 치유되었는가(사61:1-4, 8-11) [1] 김영호목사 2017-12-18 213
644 그가 오시는 길을 위하여(사40:1-11) [1] 김영호 목사 2017-12-11 236
» 기다림의 신앙(사 64:1-9) [1] 김영호목사 2017-12-06 237
642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엡1:15-23) [1] 김영호 목사 2017-11-27 225
641 잊혀진 감사(살전5:18) [1] 김영호 목사 2017-11-20 235
640 마지막심판(마25:31-46) [1] 김영호 목사 2017-11-13 241
639 셋째 아들이 되자(마21:28-32) [1] 김영호 목사 2017-11-06 218
638 불의한 청지기(눅16:1-13) [1] 김영호 목사 2017-10-30 247
637 살아서는 부자처럼,죽어서는 나사로처럼(눅16:19-31) [1] 김영호 목사 2017-10-23 273
636 씨뿌리는 자의 비유(막4:1-9) [1] 김영호 목사 2017-10-16 256
635 마지막 기회(눅13:1-9) [1] 김영호 목사 2017-10-09 243
634 그물비유(마13:47-50) [1] 김영호 목사 2017-10-02 243
633 내집을 채우라(눅14:15-24) [1] 김영호 목사 2017-09-25 218
632 은밀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막4:26-29) [1] 김영호 목사 2017-09-18 232
631 잃은 은전 비유(눅15:8-10) [1] 김영호 목사 2017-09-11 235
630 두 잃은 아들의 비유(눅15:11-32) [1] 김영호 목사 2017-09-04 231
629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눅11:5-8) [1] 김영호 목사 2017-08-28 213
628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눅18:1-8) [1] 김영호 목사 2017-08-21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