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지난 1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간호사 과정의 실습을 시작했습니다. 박사과정 코스웍이 마쳐갈 즈음 마침 제가 다니는 학교에 완화의료 교육과정이 시작되어 참여하게 되었고 또 때마침 보스턴의 유명한 병원들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Dana-Farber Cancer Institute, Brigham & Women's Hospital)과 학교 사이에 파트너쉽이 맺어져 그 곳에서 완화의료에 대한 실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첫 실습에서 만난 환자가 있었습니다. 잘 생긴 얼굴과 깊은 눈매도 인상적이었지만, 제 동생 나이 또래에 제 조카만한 딸과 지난 6년여를 동고동락해 온 약혼녀를 두고 어느날 갑자기 생긴 뇌혈관 출혈과 이에 따른 후유증으로 지난 10개월 간 전신마비에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삶을 이어가는 위태로운 상황이 참 마음에 쓰였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단지 눈꺼풀을 깜빡 거림으로 사람들의 질문에 Yes, No로 응답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합병증과 패혈증으로 이 환자가 앞으로 얼마나 더 생을 이어갈 수 있을 지 늘 조마조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약혼녀가 의료진을 찾아와 이 죽어가는 환자와 결혼을 하겠답니다. '지금까지도 결혼 하지 않고 잘 지내놓고선 왜 하필 지금 결혼을 하려고 하나...'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저의 생각과는 달리 환자와 약혼녀의 태도는 아주 단호합니다. "정말 결혼하고 싶으냐?"는 의료진의 질문에 8번이나 눈꺼풀을 깜빡거리면서 yes라고 대답하는 환자의 바램대로 병상에서의 결혼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결혼서약을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충분히 스스로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blinking으로 결혼에 동의하는 의사표현을 했다는 의료진의 진술이 담긴 서류를 법적인 절차를 위해 첨부하고 허가를 받고서야 비로소 결혼식을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복 대신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인공호흡기 위로 나비넥타이를 맨 병상의 신랑은 온 힘을 비축해 두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사랑스런 신부에게 눈을 맞추고 눈을 깜빡거리며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서약하였습니다. 결혼서약이 끝남과 동시에 법적으로 부부 된 이들의 하나 밖에 없는 딸 아이의 세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아빠가 살아 생전에 딸 아이의 세례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11년 전 저의 결혼식에서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 하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라도 영원히 사랑할 것을" 서약하였더랬습니다. 환자와 그의 부인을 보면서 "지금까지도 잘 지내놓고 뭐하러 결혼하려고 하나" 반응했던 저의 짧은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결혼식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한 서약은 배우자가 어떠한 상황이던지 관계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건강할 때에만, 나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나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 아니할 때에도 사랑하겠다는 표현.....

이 결혼식은 저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부모가 딸아이의 세례식을 통해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관계없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지금도 그러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광야같은 보스턴에서 매일 나의 한계상황을 깨달으며 좌절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도, 그로 인해 내가 지쳐 탈진해 버린 무기력한 모습에도, 때로는 기도할 마음조차 잃어버린 한심한 내 모습조차 사랑하셔서 몸소 지신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나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신 그 분..... 이런 사랑을 보장받고 있는 나도 행복한 신부인 것을...

이제 막 법적으로 부부된 이 환자와 부인, 그리고 세례식을 마친 딸 아이를 위해 잠시 기도합니다. 육체의 질병이 우리를 힘들게 할 지라도 결혼식에서 서약한 대로 변함없이 사랑하며 남은 생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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