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지난 주에 야곱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조건회 목사님이 지난 전교인 수련회 전했던 야곱에 대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리마인드 하기 위하여 지난 주에 이어서 이번 주에서 간략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벧엘에서의 경험을 했던 야곱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벧엘에서는 야곱의 모태신앙이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벧엘에서의 체험은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기의 하나님이 되는 일이 일어 났습니다. 벧엘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야곱의 영은 변화 되었지만 그의 삶은 아직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동안 여전히 머리를 굴리면서 주판알을 튕기면서 옛날 브엘세바에서의 방식대로 삶을 살았습니다. 하란에서의 그의 신앙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브니엘의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브니엘, 얍복 강에서의 야곱?/성령세례,체험/실제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다.

벧엘을 거쳐서 하란에 거한지 20, 이제는 이상 하란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식솔들을 이끌고 종들을 데리고 소떼와 양떼를 몰고서 아버지 집으로 밤에 도망을 칩니다.

라반의 추격이 있었고, 길르앗 지방에서 라반이 야곱을 따라 잡았습니다. 때의 갈등도 누가 해결하나요?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라반과 화해가 일어나게 되지요. 그래서 야곱은 평안히 고향으로 떠날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갈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도가 야곱에서 밀려 오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칼을 있는 부하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전갈입니다.

 

얍복 강가에 있는 야곱! 두려움이 밀려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불렀지만, 마음에 있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습니다.  하란에 있었을 때에 어려움이 생기면 벧엘에서 만난 자기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불러도 문제는 해결 안되고 두려움은 더욱 커지기만 했습니다.

 

벧엘을 지난 야곱은 어디로 향하여 가야 합니까? 얍복 강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얍복 강가는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 때까지 천사와 씨름 하던 곳입니다.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부르지요.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땅입니다. 벧엘에서는 하나님이 밖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인 했다면 이곳 브니엘에서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해서 보게 되지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해 다음에는 야곱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지요.  

브니엘에서 야곱에게 무슨 변화가 나타납니까? 우선 그의 이름이 변경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지요.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그의 이름이 버려집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의 본질이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의 삶도 드라매틱하게 변화하지요. 브니엘을 지난 다음에는 이상 야곱이 이웃을 속이지 않습니다. 이런 야곱의 변화는 확연했습니다. 오히려 이웃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자식들에게서부터 속임을 당하지요. 간사한 성품이 모두 변화 되는 일이 브니엘에서 일어났습니다. 가지고 태어난 성품이 변화 되지 않는데, 야곱은 바로 이곳 브니엘에서 아주 크게 성품마져도 바꾸어지게 되지요.  그렇다고 하여서 브니엘에서 야곱이 천사처럼,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것은 아닙니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작점이 브니엘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후부터 그의 영혼과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브니엘을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완전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야곱의 삶에는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찌기가 남아 있습니다.

 

무슨 찌끼가 야곱에게 남아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에 대한 미련 남아 있어서 그것을 떨쳐 내지를 못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이라는 찌꺼기 때문에 어둠의 영이 그의 삶에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어둠의 영이 방해하였기에 결단하지 못하고 세겜 땅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세겜 땅은 그가 빨리 지나가야 하는 땅입니다. 그러나 땅에 목축업을 하기에는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러기에 땅을 떠나지 못하고 느적느적 거리면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야곱은 서둘러서 벧엘로 올라 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벧엘은 그가 소시적에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기에 말입니다. 소시적에 하나님이 그곳에서 야곱을 빨리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야곱을 이끌어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요?

디나 사건!-야곱의 딸이 세겜 땅의 추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rape 당하는 일이 일어났고, 때문에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땅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디나를 빼앗아 왔고 야곱의 일족은 서둘러서 세겜 땅을 떠나서 벧엘로 올라갔지요. 사실 디나가 rape 당한 것은 야곱이 세상을 끊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야곱이 세겜 땅에 있었을 때에 결단을 하고서 벧엘로 신속하게 올라 갔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일이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지요. 세겜 땅이라는 세상의 미련을 끊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당하는 시련이지요. 야곱 일족은 가정사에 아픔을 간직하면서 벧엘로 올라가게 되었지요. 벧엘이라는 곳은 야곱이 도망자가 되어서 하란으로 쫓겨 때에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지요. 그리고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을 주셨지요:하나님이 야곱을 이끌어서 바로 (벧엘)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입니다. 야곱은 브니엘에서 바로 벧엘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냥 세겜 땅은 지나 가야 하는 곳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다시  언약을 갱신하게 되지요.

야곱의 노년 생활? 세겜에서의 시련, 그리고 요셉과 베냐민을 잃어 버린 아픔을 겪으면서 야곱은 점점 성화되어 가지요. 이런 시련들을 겪으면서 야곱의 심령에 남아 있는 찌꺼기가 청산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만난 후부터 야곱은 실질적으로 변화되는 성화의 길을 노년의 기간 동안 가게 되지요.

야곱의 브니엘 이후의 삶은 성도들이 위에서 평생 살아가는 성화의 길을 의미합니다. 성화의 길을 가는 동안 실제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예수를 닮아 가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성화의 삶이라고 부르지요. 성도는 평생 주를 실제적으로 닮아 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앞에 서서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영화롭게 야곱/47:7-10

47:7-10/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나이가 얼마냐/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이가 얼마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앞에서 나오니라

 

애굽의 총리인 요셉 때문에 바로를 만나게 되었고, 야곱은 고대 근동의 패권국의 왕을 만나면서 왕에게 손을 머리에 얹고 축복을 선포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노인이 당시의 패권국가의 왕을 만나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지요. 야곱의 이런 영광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서 영화롭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413< 평생에 가는 >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정은 중생-성화-영화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단계를 밟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직도 1:1 만나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1:1 만나면서 중생한 신자가 되었습니까? 밖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생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벧엘에서의 야곱과 같은 삶을 삽니까? 아니면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만나게 야곱처럼 철저하게 변화되어 가는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까?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서 성품도 삶도 하나씩 하나씩 변화되어 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것을 성화의 과정에 있는 성도라고 말을 하지요. 우리는 중생한 후에 평생 성화의 길을 걸어 가야 합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예수를 닮아 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브엘세바-벧엘-브니엘-바로 앞에서!


성수

2018.09.03 08:03:47

2018 8 31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8312018.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2 금요기도회(12/14/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7 1893
561 금요기도회(12/7/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1518
560 금요기도회(11/30/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811
559 금요기도회(11/23/2018) [1] 김영호목사 2018-11-26 423
558 금요기도회(11/16/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9 1118
557 금요기도회(11/9/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2 415
556 금요기도회(10/26/2018) [1] 김영호목사 2018-10-28 411
555 금요기도회(10/12/2018) [1] 김영호목사 2018-10-14 425
554 금요기도회(10/5/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7 434
553 금요기도회(9/28/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1 534
552 금요기도회(9/2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23 539
551 금요기도회(9/14/2018) [1] 김영호목사 2018-09-17 426
550 금요기도회(9/7/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9 441
» 금요기도회(8/3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3 440
548 금요기도회(8/24/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7 429
547 금요기도회(8/17/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0 507
546 금요기도회(8/10/2018) [1] 김영호목사 2018-08-13 425
545 금요기도회(8/3/2018) [1] 김영호목사 2018-08-06 468
544 금요기도회(06/01/2018) [1] 김영호목사 2018-06-13 575
543 금요기도회(05/18/2018) [1] 김영호목사 2018-05-22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