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마라와 엘림/15:22-27

 

a. 마라의 물을 물로 바꾸시는 하나님!

 

*마라와 엘림/인생길에서 만나는 시련과 역경이 물인 마라입니다.  마라가 없는 인생 길이 있을까? 물은 고난과 환난,시련을 의미한다. 인생 길에 비바람 치는 풍랑이 없고 해가 쨍쨍하게 비치는 날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인생은 사막 같은 인생이 됩니다. 사막에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목이 없는 죽은 땅이 됩니다. 인생에 적당히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 있기에 인생이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살짝 살짝 우리 하나님께서 고난과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너무 평안하기에 영적으로 안일한 상태가 되었다. 고난과 시련이 살짝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령들에게 가정과 직장에! 그래서 갈급함이 생기고 하나님을 찾아 나와서 기도하게끔 되면 좋겠습니다.

*마라가 있은 후에 무엇이 있다고요? 오아시스인 엘림이 있다/고진감래!/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인생길에서  실패로 물을 만난 분들은 엘림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모르게 준비하셨다. 우리가 마라의 물을 경험하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들 모르게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엘림을 준비하셨다.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서 했던 일은? 불평! 홍해 바다에서 일어난 구원  사건이 바로 어제의 일인데 구원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잊어 버렸다면 이해가 있을 모르나 어제의 일로 생생하게 기억이 되는데, 때문에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영적으로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자리에서 채워지지 않으면 찡찡 대면서 자꾸 보채면서 기다릴 없다. 홍해 바다를 갈라서 이스라엘이 도보로 건넜던 구원을 금방 잊어 버렸다.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했어야 하는데 인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했다. 기다려야 했는가? 이미 하나님은 엘림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임기응변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어디에  오아시스인 엘림이 있었는가? 11km밖에 오아시스인 엘림이 있었다. 엘림에는 물이 솟아 나는 12개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엘림은 오아시스입니다.

 

(적용) 삶에 발생하는 이런 저런 어려움 때문에 불평이 생기는가? 우리 하나님은 이미 엘림을 우리의 고단한 속에 준비해 놓았다. 영의 눈을 크게 뜨고 마라의 현장에서 엘림을 보았다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기다릴 있다. 오아시스인 엘림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시련 가운데 있는 분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 한다: 눈을 열어서 엘림을 보게 달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 엘림인가? 확실히 엘림은 마실 때문에 생긴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해결책입니다. 엘림은 11km떨어져 있습니다. 길은 60만이 하루 종일 걸어가면 있는 길이지요. 목마름을 조금만 참고 걸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림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고통을 감하게 하시려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셨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마시고 갈증을 가라 앉히고 엘림으로 걸어가라고 말입니다.

엘림을 만나기 마라의 물을 달게 하셨다. 무엇으로 나무조각 하나! 실제적이고 과학적인가? 아니다. 신앙적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다루시는 방법. 11km정도라면 마라의 물을 달게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엘림으로 몰아 부쳐서 가게 만들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마라에서 엘림으로 가는 동안 갈증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하면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신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 이것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엘림으로 가는 동안의 고통도 감해 주신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마라에서도 물을 달게 만들어서 마실 있게 만드셨디.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이런 우리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도 숨통을 튀어 주셨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만든 것은 일시적인 위로이지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아시스인 엘림이 있어야 하지요. 우리 하나님이 가지를 모두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b.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15:26! *a,p]ro hw:hy] ynIa} yK   왜냐하면 나는 너를(집단 단수) 치료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백성, 신의 백성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겪는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을 신의 백성이 이행해야 합니다. 선행 조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너희가 말을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이것이 신의 백성이 질병을 피할 있는 선행 조건입니다. 몸에 좋은 보약과 건강에 좋은 유기농 식품을 먹고, 유산소 운동을 함으로써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백성들이 병이 없는 육신적인 건강을 누리게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순종할 때입니다. 물론 건강한 몸을 위하여 보약도 좋은 식품도 운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필요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신의 백성들인 우리들은 보약도 식품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튼튼하게 맺는 일이 우리의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는데는 필수적이고 선행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를 행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튼튼하게 유지됩니다.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질병은 노화의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말입니다. .노병사의 윤회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인간의 생노병사를 주관하십니다. 신의 백성 밖에 있는 애굽사람, 사람들을 믿음 세계 밖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라 부를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겪는 가지의 질병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질병을 내렸습니다. 신의 백성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 내리셨던 같은 질병을 우리 하나님이 내리 있습니다. 신의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 때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도 읽혀 있습니다: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불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너희에게도 내리리니 (왜냐하면)나는 너희를 병으로 때릴 있는 여호와임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치료하는 하나님! 야훼-로프에카, 여호와-라파! 우리 인생들을 찾아와서 괴롭히는 가지의 질병-육신적이든지 정신적이든지! 요즈음은 육신적인 질병도 많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질병이 더욱 증가하는 추세인 같습니다:우울증, 조울증,조현병,공항장애 etc. 이방인들에게 임하는 질병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방인들과 동일한 육신과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죽어 있던 우리의 영을 살리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만들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죽어 있던 우리의 영을 살렸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 났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강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영과 육신은 더욱 강건하게 됩니다. 질병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만병의 의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이 걸려서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짚어 보아야 합니다. 의사를 찾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기 위하여 몸에 병으로 징계를 가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철저하게 회개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다음에 의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하지 않고 의사만 찾아 간다고 하여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질병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병을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내리신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새롭게 그리고 튼튼하게 만들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찾고 만나라는 사인이 무엇이라고요? 우리 육신에 생기는 질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생각하지 않던 질병이 몸에 발생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를 살피고 후에 의사와 약을 찾기 바랍니다. 그러면 의사와 약이 효력을 발휘하기도 하지요. 불치의 병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병을 낫게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병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길은 우리 인생에게 임하는 모든 질병에 대한 원천 봉쇄, 예방이 있는 것이 좋겠지요. 예방이 무엇입니까? 적어도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법이 활동하는 예수 안으로 들어 가게 되면 세상 법과는 다른 법이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고 주장하지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산다면 어떤 질병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혹시 질병이 걸렸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주께로 나가면 우리 하나님이 병든 그리스도인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십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실 때도 있고, 아니 하실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나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과학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인간은 병나음의 영적인 조건을 만들 병을 낫게끔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살리시면 땅에서 생존하겠거니와 죽이시면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가지는 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어서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야 된다는 점입니다.   

 

믿음의 기도&병나음/5:14-18

 

15/’믿음의 기도 병든 자를 구원한다. 믿음의 기도가 병을 낫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기도, 그것 자체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주께서 그를 일으키신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인간이 만들어야 조건입니다. 이런 조건이 없이는 주께서 능력을 행하며 기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문맥에서의 죄사함이라는 말은 병든 자가 지은 때문에 질병이 발생했는데,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요? 질병이 치유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냥 일반적으로 지은 모든 죄에 대한 사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병이 이유는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으로는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사하여 달라는 간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조금 전에 읽었던 15:26 말씀과 서로 통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순종하고 보기에 의를 행한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하나라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그러기에 나음을 위하여 무엇이 먼저인가? 의사를 찾아서 약을 처방 받아서 먹는 일이 먼저가 아니라 죄를 처리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16절에는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라! 너희는 죄들을 서로 고백하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은 때문에 죄가 장벽이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위로 임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막힘 없이 병든 지체에게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선행해야 한다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지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일이 선행하지 않고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기적, 신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백은 하나님의 기적을 있는 선행 조건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을 합니까?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사람의 의인, 사람의 중보 기도자의 기도로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병든 지체가 비록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의인의 간구로 도움을 얻어서 병나음에 이를 있다는 말입니다. 의인의 간구로 병든 자가 지은 죄를 사함 받고, 질병에서 깨끗하게 낫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가버나움에 계셨을 때에 중풍병자를 우리 주님이 고치셨지요. 사람들이 복도를 메우고 있어서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리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의 친구들이 그를 침상에 누인 채로 지붕을 뜯어서 예수 앞에 놓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주님이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중보기도의 승리이지요.

 

17-18절에는 중보기도의 위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 의인인 엘리야를 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땅에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3 6개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더니, 하늘이 열려서 비가 내리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람 의인의 간구가 이런 엄청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oJmoiopaqhv"(natue,성질이 같은)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면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병자에게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 하면 우리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믿음의 기도인데 우리의 믿음이 엘리야와 같은 믿음이 되었기에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믿음의 기도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지체가 병들어서 고생하는데, 병든 지체를 위하여 병을 고쳐 달라고 내가 중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기도를 반드시 들어서 병을 고쳐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를 믿음의 기도리고 부르지요. 하나님이 고쳐 주실까 주실까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가 아니지요. 하나님이 반드시 고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입니다. 병나음, 자신의 병이든, 이웃 지체들의 병이든지, 병나음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는 이런 확신, 내가 병나음을 위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고치신다는 확신이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병고쳐 달라고 기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낫는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에 잡혀 있다면 병나음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내가 병나음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를 따라서 낫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병나음의 확신이 없다면 확실하게 신유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 따름입니다.

 

병나음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질병을 치유하신다는 확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간과 정렬과 의지를 투입하여서 몸부림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기도 것이요, 기도하는 자는 믿음을 가지고 할지니라! 이것은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십시요. 비행기는 좌우에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행가가 한쪽 날개만으로는 하늘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날개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날아 오를 때에는 무엇이 필요하다고요? 믿음과 기도라는 날개가 필요합니다. 날개를 펴고 하늘의 하나님께로 날아 오르면 우리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병나음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병든 분들은 육신의 아픔 때문에 마음과 영혼도 위축이 되어서 기도가 약해 집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을 하라고 했습니까? 14절에 교회의 장로들을 청해서 장로들로 하여금 병낫기를 위하여 중보기도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병든자가 장로들을 청하면 장로들이 무엇합니까? 기름을 병든자에게 바른다. 이것은 하나의 의식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 의식에는 없으니 올리브 기름을 붓지 않아도 됩니다. 병든자를 찾아 가서 그의 손을 붙들고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 전반적으로 행정과 관리도 중요하고 재정 편성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병든 지체를 찾아가서 주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영적인 사역을 장로님들이 감당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기도를 하자면 성령으로 말미암은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좋겠지요. 우리 교회의 교우들은 병든 자가 집에 있으면 당회원들을 초청하여서 기도 부탁을 하고 예배를 드려 달라고 부탁하기를 바랍니다. 담임 목사에게만 부탁하지들 말고요. 장로님들이 장로의 권위를 세워 나갑시다. 우리 교외의 장로님들은 충분히 그런 신유의 역사를 만들 있는 믿음이 있는 분들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 전체는 이런 신유의 은사와 믿음의 기도라는 우산 속에 놓여 있기에 우리 주님께서 장로님들이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들으십니다.


남상민

2018.08.15 06:31:25

2018년 8월 10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810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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