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1996년 1월 1일. 일본 도쿄

  無誠無物. “정성이 담겨있지 않으면, 정성을 쏟지
않으면, 가치있는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93년 봄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때 선거를
도우면서, 홍보를 위한 책자와 팜플렛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둘째를 낳으면서 또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 한번씩 공부가 힘들고 생활이 힘들었을 때,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다 노력을 통하지
않은 것은 설령 빛난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쩌면 무기력했던 나를
이끌어온 것도 이러한 다짐, 마음가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노력이 습관화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다섯, 만으로는 서른셋이 된다.
지금의 나 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중학교 때 처음 공자의 논어를, 논어의 한 구절을
접하고 그 때부터 나의 지향은 군자(君子)였다. 나의
상태는 소인(小人)이었고, 돌아보면 그때부터 나는 항상
현존하는 내가 싫었다. 내가 태어난 그 상태가 싫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나는 소인이었고,
군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용이 되고 싶었다. 자꾸자꾸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고 비상하고
싶었다. 나는 어쩌면 수채의 지렁이, 개울의 미꾸라지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대학에 들어오면서 허물을 한번 벗었다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군대에 가고 사회생활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또 한번 허물을 벗었다고 생각했다. 국회에서
일하면서 또 허물을 벗기 시작했고 훌륭한 분을 모시고 더
넓은 세상에서 삶으로서 내 몸에 있는 허물이 벗겨지듯
나는 아마도 성장했다.

  나는 조그만한 물이었다. 사주에 의해 증명이라도 되듯
나는 계속 끊임없이 흘러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용을 꿈꾼다면 앞으로의 4-5년은 잠룡(潛龍),
잠수(潛水)의 기간이다. 내가 만일 지난 삶을 성실히
살아왔다면 아마도 지금은 지난 20여년의 노력 덕분에
지렁이, 미꾸라지, 뱀의 단계를 넘어 이무기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상상컨대 이무기는 어떤 존재인가.
승천(昇天)에 실패한 것이 이무기라고 하는데 이무기는
어떠한 형상을 하고 있을까. 이무기는 아마 껍질을 벗긴
뱀의 모습을 가졌으나 그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그런
모습일 것이다. 용이 될 수 있는 상태의 마지막 껍질은,
허물은 벗었으나 용의 본질은 아직 하나도 갖추지 못한
그런 모습. 그렇다면 용(龍)을 용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여의주(如意珠)를 생각했다. 그리고
토정(土停)의 말대로, ‘龍生頭角 然後登天’의 자구처럼
뿔이다. 그리고 비늘, 철갑같은 비늘이 용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용은 구름을 거느리고 비를 뿌리며 불을 뿜는다.
조화를 부린다.
  잠룡, 아니 잠수한 이무기는 여의주를 만들어야 하고
비늘을 쇠똥처럼 온 몸에 철갑을 두르듯 붙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에서 나올 때에는 뿔을 돋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연후, 등천하여 조화를 부리고 비를 뿌릴
것이다. 대지 위에.

  如意珠는 무엇보다도 意, 뜻이다. 우선 뜻을 세움이고
굳게 함이고 풍성하게 함이다. 뜻은 비전이고
원리원칙이다. 우선 뜻이 확고하고 이 뜻과 같이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선 자기
자신이 如意해야 한다. 그러므로 용의 如意珠는 자기의
肉∙體와 意∙志, 그리고 자기와 타인, 자아와
세계와의 일치(一致), 일여(一如)이다. 존재의 단계에서가
아니라 의식의 단계에서 일여함이다.
  지금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헷갈리고 그래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며 자신없고 회의한다.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역시 통설은 옳다. 용의 제1조건은
여의주이다. 여의주는 용이 되기 위한, 용이 갖추어야 할
제일 첫 번째의 능력이다.
  용의 철갑 같은 비늘은 민중의, 인민(people)의 고통과
한이라고 했다. 인민의 고통과 한, 애환을 철갑처럼 온
몸에 체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몸이 무겁고 행동이
신중해야, 언행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 아마도 용이 비를
뿌리는 것은 이 인민의 고통과 한 때문일 것이다.
  뿔은 권위(authority)이자 지위(social position)이다.
위엄이기도 하다. 이것이 있어야 승천할 수 있기도 하고,
승천하면서 뿔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뿔이란
용이 갖추어야 할 것 중 최후의 것인지도 모른다.

  여의주, 비늘, 뿔. 이 모두는 고통의 산물이다.
진주(眞珠)가 상처로 인한 고통, 그 고통과 투쟁의
산물이듯 용의 여의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철갑같이
무거운 비늘을 체화하여 하늘을 나는 것도 그 무게를
감당하며 기뻐하고 동화(同化)하는 것도 고통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껍질을 깨는 아픔처럼 뿔을 내고 그것을
달고 다니는 것도 이무기로서는 소인으로서는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고통이란 현상의 파괴, 타파이다.
현상이 파괴되고 그것이 습관화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일상이고 기쁨일 것이다. 따라서 여의주,
비늘, 뿔이 형성된 뒤로는 그것은 기쁨이고 일상일
것이다. 용으로서는, 군자로서는 이것이 희열일 것이다.
나는 아직 그 경지를 모른다.

  잠수(潛水)의 상태를 견디어내고 그 속에서 여의주와
비늘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가 이무기와 용의
분기점이다. 최소한 여의주와 비늘을 갖추지 못했으면 몇
년이든, 몇 십 년이든 물 속에서 나오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잠수할 때의 가장 큰 덕목은 인내(忍耐)일지도
모른다. 이무기가 되느니 물 속에서 죽겠다는 각오가
없이는 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또 다른 덕목은
진중(鎭重)함이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일지도 모른다. 만족을 못하므로, 능력이 없으므로.
지렁이가 이무기가 되는 것은 상당부분 필연 또는 우연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은 의지의
영역이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시중(時中)이란 호를 스스로
지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때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몇 십 년 잠수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는
인간의 노력을 기다리지 않는다. 역사는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휩쓸고 지나갈 뿐이다. 나에게 잠수가 허락된
시간은 길어도 2000년까지의 5년이다. 그 이상이면 썩는
것이다. 용이 되느냐, 이무기로 남느냐, 어떤 인생을
사느냐는 향후 4-5년에 달려 있다. 핵심은 어떤 사회적
지위를 얻느냐가 아니라 뜻을 확립하는 것, 뿔이 아니라
여의주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확립하는 것이다.
  7월말까지 일본에서 할 일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민족의 진로』라는 주제의 책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시론적인 책(글)이라 해도 이것을
통해 뜻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둘째는 영어로
대학필수의 text를 읽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학,
국제정치학, 필요에 따라서는 기타의 부분을 읽어야
나름의 이론적 체계화의 준비가 가능하다.

  그나마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막연하나마
지향이었고 고통의 감내였다. 앞으로 나를 만들어줄 것은
확고한 지향과 고통의 습관화, 그를 위한 인내와
진중함이다. 향후 5년은, 따라서 앞으로 7개월은 내
인생의 대승부(大勝負)이다.


1996년 5월 25일. 일본 도쿄

  海公. 이제 나의 스승은 정해졌다. 바다다. 작년부터
나는 바다와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연했다.
물은 흘렀고 또 바다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했으나 나에게
바다의 상은 막막했다. 따라서 나의 스승의 상도, 내
인생의 새로운 등대불도 희미하게 인식되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그 스승을 海公이라고 한다. 해공은 나의
스승이자 나의 나침반이고 나의 등대이자 나의
목적지이다. 나는 해공 그 자체이고자 한다.

  해공은 나다. 그러나 나는 해공이 아니다. 나는 바다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바다가 무엇인지도, 바다도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나는 바다가 아닌 곳에서 왔다. 물론
바닷물도 아니다. 나는 흘러왔다. 그러나 이제 누가
어떻게 이것을 구별할 것인가. 이것은, 이 바다는 내
인생의 종점이다. 그래서 또 시작이다. 이 바다의 품에
안긴, 海公의 품으로 흡수되어버린 듯한 물은 이제 분명히
바닷물이고 또한 분명히 바다이다.
  오직 할 일은 바다를 닮는 일이고 바다가 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바다를 인식하고 느끼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바다이고 바다가 나’라는 인식, 내가 바다와
분리되는 것이 의식되지 않고 내가 바다와 오직 하나여서,
저 이글거리는 태양, 유일한 창조주인 태양에 의해서만
분리되는 것, 그 힘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힘에 의해서도
나누어질 수 없는 것, 그런 상태로 되는 것이다.

  지난 내 인생을 지금 나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3시기로.
  첫째는 독공(篤功)의 시기이다.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
지어준 ‘독공’이라는 이름에 따라 국민학교부터 대학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그 10년간은 그야말로 독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다. 아니
증발했을 것이다. 따라서 친구들이 농반진반으로 붙여준
그 독공은 나에게 명예로운 이름이다. 나는 독공의 시기에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篤功이었다.
  둘째는 시중(時中)의 시기이다. 대학에 들어온 후
국회에 근무할 때까지 13년간의 세월이 이 시기이다. 나는
시중을 선택했고 아꼈고 따랐다. 나는 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 나를 지배한 것은 한 마디로 말해 변화이다. 변화는
곧 길이었고 삶이었고 행복이었다. 그 변화에 나는 내
스스로 하나의 화살이 되어 적중(的中)하려 했다. 時라는
과녁을 내 온 몸을 살아 的中시키는 것, 그것이 時中이다.

  대학, 그것도 서울대학에서 1학년 때 이방인으로
느껴졌던 내가, 학생운동에 대한 의식이 전무했던 내가
운동에 눈을 뜨는 2학년, 주도하는 3학년, 창조하는
4학년을 거쳐 운 좋게 군 생활한 것도, 그 생활 중에서
운동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운명적인 일은
운명에 맡겨버린 것도, 그리고 흐르는 時에 나를 던져
민족을 위해 한 몸 산화하려 했던 생각도, 연구도,
활동도, 혁명의 허무함에 무상함에 정반대로 달려간
것도...... 그러나 결국 이끌려 국회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이수인에서 김대중으로,
다시 김원기로, 또한 그렇게 다닌 처지를 한탄한 것도
돌아보면 모두 時中의 일이다.

  깊은 산 샘물이 篤功으로 물꼬를 텄다면, 時中으로 산의
개울을 거쳐 시냇물에 흐르고 강물에 이르러 바다에
다다랐다. 시중의 시기는 고민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아니
방황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산하고 측정했다. 그러면서도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을 맡겨두고, 갈대처럼 나를 맡겨두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運이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命이고, 다시
생각하면 選이고 또 擇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한다. 그 때 시중했으므로,
시중이었으므로 경거망동하지 않았다고, 말라 버리지도
스며들지도 않았다고. 시중은 나의 스승이었고 안내자였고
등대였다. 나의 반려자였고 동지였고 친구였다. 나의
꿈이었고 희망이었고 생명이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배시중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배기찬보다도.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의 4반세기를 보냈다. 청년기를
보냈다. 독공에서 시중으로, 참으로 사랑스런 이름으로,
뒤돌아보며 행복한 이름으로, 언제나 불러도 또 부르고픈
이름으로.    

  이제 제3의 시기, 장년의 시기는 海公의 시기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時中이 어울리지 않았다.
욕구불만이었다. 아마도 작년 초부터였을 것이다. 흐르고
변하고 그리하여 화살처럼 나르고 的中하는 것이 뭔가
부족함으로, 불안함으로, 그리하여 다시 괴로운 것으로
다가왔다.
  흐르면서도 흐르지 않고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물이면서도 무겁고, 무거우면서도 깊은 것. 넓으면서도
크고 크면서도 均一하지 않는 것. 하나가 하나가 아니고
만물이 하나 속에 녹아드는 것. 나를 주장하지 않고 너를
거부하지 않으며, 나를 피하지 않고 너를 탐하지 않는 것.
나는 부족하지 않고, 그리하여 괴로워하지 않고, 그리하여
괴롭히지 않는 것.
  나는 평온하고 싶다. 그리하여 평온하게 하고 싶다.
나는 포용하고 싶다. 그리하여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고
싶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하여 的中은 모든 것이
아니다. 一方的일 뿐.
  지금 나는 바다만 생각하면 뭔가 말할 수 없는, 말하기
힘든 평온함과 여유와 혼연(渾然)함을 느낀다. 힘이 솟고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바다 그 자체이다, 내가
생각하고픈 것은, 내가 느끼고 싶은 것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은.
  그래서 나는 海公이라 부른다. 13년간 時中을 불렀던 그
마음으로, 그 정열과 그 바람으로. 해공은 아름답고
인자하다. 석굴암의 부처처럼, 다카노하나(貴の花)의
얼굴처럼. 해공은 넓고도 깊다. 그리하여 들끓지 않아서
좋고 표시나지 않아서 좋다.

1996년 9월 27일. 미국 메사추세츠

  미국에 온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고
힘차게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정신을 하나로 모아
생각을 정리하고 힘을 더하여 부족한 공백을 메우고
나아가 사람을 모아야 한다. 나 자신의 상태도, 天時도
일을 도모할 때가 온 듯하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그
동안 실어왔던 수많은 물질들을 내려놓듯 나 또한 지난
인생의 묵은 찌꺼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大海에 내 몸을
싣기로 한 이상 뒤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주저앉을 수도
없다. 우미하라(海原)에 이르기까지, 아니 내가 바다,
너른 바다와 같이 되기까지 수양하고 정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하느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용기를 내어
고해(苦海)일지라도 헤쳐 나가야 한다. 篤功의 시기,
時中의 시기를 지나 이제 본격적인 海公의 시기를 맞아야
한다. 삶의 원칙, 인생의 원칙을 세우고 행동의 패턴을
하나하나 형성해나가야 한다. 삶의 기록, 사고의 잔상들을
정리해 둠으로써 인생의 거울로 삼고 내 일상생활을
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미국에 있는 동안 한 권의 책을 쓰자. 작년부터 쓰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한『통일건국을 위하여』를 내년 5월까지
쓰자. 이 책을 쓰면서 미국에서의 연구주제인
‘International Cooperation for Transfomation of
N.Korea’를 정리한다. 이 책을 쓰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통일건국포럼’을 만든다.


1996년 9월 29일

  이제 일요일이 교회에 가는 날이 된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지 한 달이 지난다. 9월 1일 Grace Chapel과
캠브리지 연합장로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의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의 한 구석에 두었던 예수, 그리고
교회를 직접적으로 대면하기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사랑’은 나에게 운동(movement)의
근본이유(rationale)였고, 사랑을 주창한 예수는
묵자(墨子)와 더불어 나의 두 스승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人間의 아들'로서 '존경'의 대상이었을 뿐, '神의
아들'로서 '믿음'의 대상은 아니었다. 단지 그 때부터
막연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는 말이 나를 맴돌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동경대를 마친 후 미국에서 교회에 다니기까지의 지난
한 달 동안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동경대학에서
하버드대학에 간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보는 시선도 내
자신의 마음태도도 달라져서 그런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인간관계가, 나의 마음 씀씀이가 예전같이 되지 않고
갈등이 일고 불화가 생긴다.
  미국에 도착하여 하버드 기숙사에서 보낸 첫 일주일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이었고 가족 간의 불화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나
자신도 막상 이렇게 큰길을 떠나 보니 자신이 없고 앞으로
맞이할 상황들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도
생긴다.
  내가 꿈꾸는 인간형, 그런 인간형은 내가 하려고 하는
사업, 대업(大業)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인간형이 되려고 하는 데에 힘들어함도,
그리하여 짜증내고 포기하려고 하는 자세는 지난 한 달간
내 불안의 큰 요인이었다.
  적은 물이 흘러 흘러 강에 이르고, 이제 바다에,
태평양과 같은 대양에 이르러 느끼는 기쁨과 불안, 희망과
절망이 한꺼번에 퇴적되어 가라앉는 듯하다. 나에게
의미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내 인생 그
자체를 위해서도 여기서 가라앉을 수는 없다. 과거의
나로는 이제 더 이상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고 한
시도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렇다고 뒤로 다시 거슬러 갈
수도 없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강과 바다의
접점(接點)에서 하느님을 구한다.

  “하느님은 나의 구주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수확,
가장 의미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고, 마음 또한 평안을 찾고 새로운 힘도 꿈틀거리는
듯하다. 더불어 통일국가의 정신적 방향타로 그리스도교와
민족주의를 생각해본다. 민족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공허하다. 약하다. 일단 윤성주 선배께 고마워하자.


1996년 10월 6일 일요일

  두 번 태어난다는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나에게
항상 소망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다시 태어남을 소망했고
그러한 단절과 도약을 지난 인생 속에서 의식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오늘도 나는 다시 태어남을
소원하고 기도하고 감사한다.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그
힘과 그 뜻을 따름으로써 나는 새로이 태어남을 느낀다.
시작한다.  

  聖만찬 의식을 미국교회인 Grace Chapel에서 했다.
예수님의 몸인 빵, 예수님의 피인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나는 그 분을 느낀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그 고통과 기쁨의 의미를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영광일 것이다. 그 옛날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오직 중국의 황제 1인만이 하느님의 아들,
천자(天子)라 칭할 수 있었다. 그 외의 어떤 나라의 어떤
왕도 천자라 칭함이 허락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친구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하느님의 아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을 친구라 부르고 또 그렇게 친구되어 사는 것
이상으로 큰 기쁨이 있을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뜻을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생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구원이다. ‘빽’이다.
  나는 흔쾌히,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게 하느님,
예수님을 나의 삶으로 맞이한다. 저 끝없는 바다와 같은
하느님의 가슴속으로 내가 안김으로써 나도 바다와 같은
너른 마음과 깊고 강한 삶을 살고 싶다. 인생은 허무하고
인간은 미약하나 하느님, 예수님으로 하여 영원으로,
전지전능의 능력있는 존재에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예수님께 감사하고 나를 이끌어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 그리스도교는 참으로 위대하다.


1996년 10월 19일 토요일

  10월 18일부터 1박2일간 캠브리지연합장로교회의
수련회를 Aldersgate라는 미국교회 수련장에서 가졌다.
우리들은 아이들을 모두 잠들게 하고 자정이 지나 수련장
한 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각자 통성기도를
시작했다. 기도 시작 전에 김영호 목사님은 소나무 뿌리
뽑듯이 기도하라고 하셨고 나는 몇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기도를 했다.

  한참을 기도해도 기도가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주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의 주제로 기도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워함이
살인에 이른다’는 성경, 목사님의 말씀처럼 그러한
살인자의 마음으로, 그런 죄의식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나의 죄가 막중함을 느끼는 만큼이나 나는 꼭
용서를 받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용서도
희미하게가 아니라 ‘두 귀’에 ‘하나님의 목소리’로
“기찬아, 네 죄를 용서한다”고 똑똑하게 하늘에서 들릴
때까지 기도하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밤을 지새워서라도
하나님이 “용서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까지 기도를
하리라 생각하고 계속 기도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이 큰
애 이정이가 생각이 났다.
  다섯 살도 안 된 이정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아버지인
나는 가끔 회초리를 들고 이정이의 발바닥을 때린다. 그때
회초리를 들고 때리려고 하면 이정이는 손이 발이 되도록,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나에게 빈다.
  “아빠 용서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예? 다시는
안그러겠어요, 제발, 아빠!......”
  ‘이정이가 아빠인 나에게 사소한 잘못에도 그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비는데, 하나님이 진정 나의
아버지라면 나도 이정이처럼 친자식의 마음으로
친아버지께 그렇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는가. 더욱이
나는 죽을죄, 살인죄를 지었는데......’ 이런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이정이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꿇어앉아 눈물을
쏟으면서 손으로 빌기 시작했다.
  “아버지 제 죄를 용서해주이소. 살려주이소. 아부지,
살려주이소.......”
  그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늘에서 두 팔로 안을 만한
크기의 붉은 불덩어리가 내리치듯 나의 허리 아랫부분을
꿰뚫고 들어왔다.

  불덩어리는, 성령은 전기처럼 내 몸을 감전시켜
꼼짝하지 못하게 고정시켜 놓고는 허리에서 배로,
가슴으로 치고 올라왔다.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불덩어리는
가슴을 태우며 입으로, 코로, 눈으로, 머리로, 온갖
구멍으로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내뿜듯 열기를 내뿜었다.
  코는 끈적이로 막히고, 입은 저절로 열리고, 혀는
주체할 수 없이 밖에서 뽑아내는 듯, 안에서 떨어져라
밀어내는 듯, 굳어지는 듯, 휘말리는 듯, 나의 마음과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였다. 혀는 휘말려 소리를
만들어 내고,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정신 또한
혼비백산했다.
  미국에서 엄청난 위력으로 나타나는 회오리바람, 그
토네이도와 같은, 불덩어리로 된 회오리, 불기둥. 허리를
치고 들어온 그 불덩이가 원폭(原爆)처럼 폭발하여 한
바탕 후폭풍을 낸 뒤, 마침내 허리를 결박하듯 조여졌던,
달구워진 엔진처럼 뜨거웠던 몸은 드러눕고 싶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혀는 아직 입 밖에 머무는 채로
누웠다. 그리고 소리가 나왔다. “오! 하나님, 하나님.
오! 하나님.......하나님 아버지. 아부지!......”
  이현이의 양말로 눈물이 뒤범벅된 콧물을 닦으며
“하나님이 이렇게 내 죄를 용서해 주시는구나. 예수님의
영, 성령이 이렇게 임하는구나. 하나님, 성령, 예수님이
존재하시는구나, 성경의 말씀대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울먹이며 말한다.  

                         *                      *
  다음날의 아침기도에도, 점심기도에도 가슴은
뜨거워지고 불덩이가 치고 들어온 허리 아랫부분은 한방
맞은 것처럼 우리하게 아렸으나 무릎을 꿇은 나는
감사하고 영광에 기뻐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성령으로 허락하신 것에 대해 다시 감사한다. 나는
소원한다. 소망한다.
  “하나님 아버지!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다시 태어난 저의 삶 모두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제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는 죽음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저는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저는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정이가 저에게 용서를 구하듯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어린 자식이고
하나님은 저의 인자하신 아버지입니다. 금방 태어난,
핏덩이같이 간난이인 저를 아버지 하나님 키워주시고
돌봐주십시오. 아직 저에게는 지난 인생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깨끗이 해 주시고
지워주시고 순백으로 갈아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천한 죄인을 아들로 받아주시고, 아들되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저의 일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살겠습니다.“
  김영호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저에게 높은 차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이수인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


1996년 10월 24일 목요일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한번 태어나고 한번 죽는
것이지만, 그것이 남과 죽음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사람은 세 번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육체적인
탄생, 또 한번은 사회적인 탄생, 그리고 영적인 탄생이다.
육체적인 탄생으로 인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고
육체적인 탄생에 부모가 있고 특히 육체적인 생명을 준
아버지를 生父라 할 수 있다. 배씨 성을 가지고 칠곡
땅에서 태어난 나는 相字洛字 아버지를 ‘낳아주신
아버지’, 生父라 부른다.

  육체적인 탄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탄생이 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사회 내에서 자기의 위치를
잡고, 사회적 생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육체적인
생명을 가진 사람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생명은 있어도 사회적 생명은 없을 수도, 병들어 있을
수도, 미약하고 허약할 수도 있다. 나는 사회적 생명을 준
사람을 師父라 부른다.
  내가 사회적 존재로 활동할 수 있게, 그것도 사회
속에서 방황하고 고민하고 그리하여 비관적 사회관과
역사관, 허무주의적이고 위축된 태도, 그야말로 육체의
영위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을 때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과감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끌어주신 분은
사회적 생명을 주신 분이다. 나는 이를 ‘선생님
아버지’, 師父라 부른다. 이수인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회적 존재로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가졌던 꿈과 희망도 그리고 열정과
의지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사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영원무궁한 세계, 삶과 죽음을 초월한
절대 세계 속에서 다시 태어남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 육체적 존재가 사회적 존재로 모두 거듭
태어나지 않듯 이러한 존재가 절대적 존재로 모두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성자인 예수님과 그 피와 그
영혼을 통해 다시 태어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하느님 아버지, 聖父이다.

  나는 육친의 아버지와 선생님 아버지와 하느님 아버지를
모두 모시는 영광을 안았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孔子의 말씀처럼 親(父子有親)을 최고의 덕목으로 한다.
친해야 한다. 가까워야 한다. 기탄이 없어야 하고
스스럼이 없어야 한다. 육친의 아버지도, 선생님
아버지와도, 하나님 아버지께도 친해야 한다. 가까워야
한다. 하나님께 매주 기도를 드리듯 생부께도, 사부께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연락을 해야 한다. 일요일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연락일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내가 당신의 품안에
있다는 그 연락....
  왜 연락을 해야 하고 친해야 하는가. 친하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이고 독립하고자 하는 것은 자식의
마음인가. 아버지는 자기를 닮은 자식을 좋아하고, 자기
뜻을 실현해줄 자식을 기뻐하고 힘을 준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자기와 상의하는
자식을 좋아하고 어린애가 응석을 부릴 정도로 서로간에
허물이 없고 벽이 없는, 그리하여 만만한 자식을
좋아한다. 아버지는 순종하는 자식을 좋아하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는 자식을 좋아한다. 왜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주었는가. 生父, 師父, 聖父
모두에게 효도해야 한다. 이 중에 성부가 영원이고
절대이다.

  사람이 세 번 태어나야 한다면, 그리고 세분의 아버지를
모시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세 개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태어날 때 육친의 부모,
조상이 지어주는 이름이고, 또 하나는 사회적 생명을
부여받을 때 선생님 아버지로부터 받는 이름, 이것을
우리는 號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절대를 향한
영적인 생명을 받을 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름을
받아야 하고, 우리는 이것을 세례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완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개의
이름을 가져야 하고 세 개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이에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 번 태어나야 하고 세 번
태어나게 해준 분들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1996년 11월 17일 일요일

  오늘은 우리 집 전체가 세례를 받았다. 목사님은 우리들
머리 위에 물을 뿌리셨다. 이것은 다시 태어남의
표시이다. 하느님, 예수님의 품안에서. 나는 그저께
목사님으로부터 Nathanael이라는 세례명을 받았고 세례를
받음에 따라 이제 종교이름으로 나다나엘을 갖는다. 나는
다시 태어남이다. 나다나엘은 누구인가.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한복음, 1:47)
  나다나엘은 12제자 중의 한사람으로 마음이 아주 깨끗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음직하다. 나는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남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다나엘, 김영호 목사님께 감사하자.

  나는 종교이름으로 나다나엘을 가지면서 해공이라는
사회이름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해공이 나타내는 것은
바다다. 바다 그 자체이다. 나는 여기에 내게 사회적
생명, 사회적 활동의 새로운 차원을 있게 한 분의 이름을
더하고 싶다. 그래야 될 것만 같기도 하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의 이름을 가지듯 나는 내가 존경하는 분의 이름을
나의 이름으로 갖고 싶다. 그리하여 나다나엘이 그의
이름으로 내 속에 살아있듯 내가 존경하는 그 분,
사랑하는 그 분도 이름을 통해 내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분이 이수인 선생이다. 이수인 선생은 공자를 닮았다고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했고 말해왔다. 세상의 온갖 고통과
기쁨을 모두 감싸안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치열한 태도는 그의 모습에, 삶에, 말에 베어 있는
듯하다. 내가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상당부분 이수인
선생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나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면 나는 어떻게
해서 다른 차원의 존재, 나보다 더 고차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여 따를 수 있을까.
또 그러한 고차원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이수인 선생은 인간 세상에도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 인간
가운데에서도 다른 차원의 인격과 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리하여 내가 그 분을 모시며 한편으로는
고민하고 회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눈물 흘리며
감사하고 깨닫고 의지했다면 인간을 창조하신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도 상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수인 선생이 내게 살 집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듯 하느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그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삶을 주신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수인 선생이 나보다, 보통 인간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수많은, 보통 사람의 몇 배의 일을 하시듯 하나님께서는
그 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만인과 만물을 내려보시고
살피시고 또 부름에 응답하신다. 나는 교회에 다니면서
이수인 선생을 통해 하나님께 더 확실히 빨리 나아가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통해 이수인 선생께 더 가까이
다가서고 더 깊이 느낀다. 이수인 선생은 내가 요청하는
모든 일을 들어주시고 내게 부족한 모든 것을 지적하시고
메워주신다. 그래서 師父, 선생님 아버지이다. 나는 이제
海仁으로 사회이름을 부르려 한다. 해인은 바다이다.
그리고 동시에 李壽仁 선생의 仁이다.  

  하나님 아버지, 聖父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더욱 강력할 것이다.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므로,
전지전능하시므로,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고
심판자이시므로. 나는 성령세례를 받고 물세례를
받음으로써 분명 다시 태어났다. 내 삶의 영원함 속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가는 영원함 속에서 나의 이름은
나다나엘로 대표되기를 원한다. ‘하느님이 주신다’의
뜻이라 들었다. 아마 이 이름은 예수님께서 지어주셨을
것이다. 목사님께 내가 기도요청해서 얻은 이 이름 또한
내 속에 임재해 계신 성령의 빛으로 된 것일지도 모른다.

                       *                            
*
  세례를 받고 집에 돌아와 밤이 되었다. 특별한 것인지,
일상적인 것인지 왜 그런지는 모른다. 우리가 세례를 받아
달라졌는지, 이현이가 달라졌는지 밤 10시가 넘어
이현이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악을 쓰면서 울었다. 나는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쁜 영의 장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도 기도하고,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야 물러가라”고 몇 번이고 외쳤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 도와 주십시요”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간절히.......
  약 한 시간이 지났을까. 기도하는 나에게, 수련회에서
성령(불덩어리)이 내 몸에 들어온 바로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입에서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한여름 낮의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나무 우거진 산 속의 상쾌한 공기내음처럼
열기가, 숨이 뿜어져 나왔다. “성령은 한번 들어오면
다시 들어오지도 또 나가지도 않는다”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성령이 다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수련회 때와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허리 쪽에서부터 온 몸으로 불덩어리가 뻗어 나오고
입에서 혀는 저절로 움직이고 울부짖는 소리를 낸다.
눈물이 쏟아진다. 소리가 끝나고 나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계속된다.
  감전된 것처럼 조여졌던 몸이 다시 풀어지고 이제
아기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바로 그때, 집사람이 불안에
못 이겨 전화를 한 뒤 목사님 부부의 도착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이현이는 언제 울었느냐는 듯 죽은 듯이 잠이
든다.

  성령과 악령을 다시 생각하고 목사님과 상의하고
찬송하고 기도한다.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뭐가
뭔지, 뭐가 악령의 장난이고 왜 성령은 조화를 부리는지,
악령의 장난과 일상적인 질병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의 존재이다. 성령이 존재한다면
악령도 존재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나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가. 밤 12시가 되고 잠이 든다.


1996년 11월 24일 일요일

  지난 일주일간 많은 고민을 했다. 지난 주 일요일 밤의
일로 집사람과 갈등도 있었고, 내 스스로 ‘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러다가 내가 psychic하게 되어 생활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영’의 존재가 확실하다면-이것이 인정되지만, 그
‘영’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성령, 무당의 영,
나쁜 영, 잡영(雜靈), 기타 등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내게 임한 영이 성령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나는
매일 아침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나는 금요기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상한 의심이 들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어제부터, 오늘은 교회에서의 주일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몇 가지를 물어보시는 것 같다.
  “기찬아, 너는 누구에게 기도했느냐. 수련회에서 너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느냐. 하나님 아버지께. 그 때
나는 너의 간구에 응답했다. 지난 주 일요일 밤, 너는
누구에게 기도했느냐. 분명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십시요’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의 바로 그
간절한 도움 요청에 응답했다. 너는 '나'를 불렀고,
나에게 용서를 구했고 도움을 구했다. 나는 ‘너’의
부름에 대답했고, 너를 용서했고 너를 도와주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하란 말이냐. 너의 기도에 응답하는 내가
잘못이란 말이냐. 너의 기도에 응답하는 나, 그리하여 너
속에 있는 영이 누구겠느냐.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너는 의심이 풀리고 만족을 하겠느냐. 나는 네가 부를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고 손을 내밀었거늘, 어떻게
해야 너는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나를 알겠느냐?”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느끼는 데는 눈물을 통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가.

  그 때가 아마도 1991년 6월경, 지방의회선거가 있을
때였다. 영광∙함평에서의 지방선거를 도우려고 나는
이수인 선생과 함께 내려갔다가 같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밖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지방선거 운동기간 동안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모욕이라고 느낄 정도로 혼이 나고, 그 가운데서 선생님이
아주 미워지고 두려워지고, 그의 인격을 회의하고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를 마치고 한밤중에
함께 올라오는 차안에서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홀로 눈물을 흘리며 이수인 선생의 사랑을
느꼈다. 한 차원이 높은 사랑, 나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든 사랑.

  차원이 높은 사랑은 눈물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예수님의 그 넓으신,
깊으신 사랑은 눈물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일까.


1997년 1월 19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


1997년 1월 31일 금요일

  “우리 가족에게, 나에게 큰 행복과 기쁨을 내려주신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요즘 우리는 참 행복하다. 이현이는 건강하고 발랄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 재롱에 모두 아이 키움의 새로운
기쁨을 얻는 듯하다. 이정이는 항상 그러하듯 빛나고 맑고
나를 사랑함이 깊다. 집사람은 이현이의 출산 이후로
좀처럼 가져보지 못한 여유와 기쁨을 누리고 있다.
소설책을 하루에 한 권 읽을 수 있다면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행복일 것이다. 집사람에게 다짐하듯 확인하듯
이 모든 행복은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이 내려 주신 것이다.

  나는 오늘 또 다른 체험을 했다. 수요 성경 공부 시간에
마음(心)과 영(靈)이 다르다고 목사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아니라 영의 기쁨을 느꼈다.
  오늘 점심 이후로 나는 성령을 받았던 그 자리 부근에서
우러나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은근하고 평온하고 넓고
가득하고 든든하고 희열하고 사랑하는 그런 느낌, 그런
무엇을 가졌다.
  아마 이것이 영의 기쁨이리라. 아마 이것이 성령의
열매, 성령 충만함의 기쁨이리라. 이것은 이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기쁨이자 심령의 상태이다. 이 상태는 내가
철든 이후로 전 인생을 통해, 지난 20년간 몽매에도
그리워하고 추구해온 인간의 이상향, 이상적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심령의 상태가 아닌가. 군자(君子)의
상태이고, 바다(海公)의 상태가 아닌가.  

  금요기도회 시간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죽을  죄인 다시 살리시고,
아이들도 다시 살리시고, 집사람도 살리시고, 기쁨주시고,
저의 기도에 항상 응답하시고, 살아서 항상 옆에 계시고,
안에 계시고, 위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지난 세월 품어온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하나님,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저의 인생의 비원이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삶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기쁨 함께
하게 하옵소서! 이 기쁨 함께 하게 하옵소서! 이 기쁨,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게 하옵소서! 함께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아부지!....”
  그리고는 이전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쏟아지며,
혀는 휘말려 울부짖는 소리가 나온다. 아버지,
아부지....이 또한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가!
  나는 이전까지는 목사 외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시켜도
좋다고 했지만, 이제는 목사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1997년 2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오락가락한다. 그 전지전능성을
어떻게 믿고 생각해야 하는가. 물론 성령은 믿지만.
하나님을 믿는데 한계를 두어야 하는가. 모든 일에,
무조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면 되는가. 하나님의
歷史, 役事에 인간의 일은 무엇인가.
  그래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안할 때나 괴로울 때나
내가 믿어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 예수님이 아닌가!


1997년 2월 14일 금요일

  지난 수요일, 예수님의 부활절까지의 고난의 주간이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육신과 영혼 모두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2천만 형제자매를 위해 하루 한끼 점심을
먹지 않는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  
  오늘은 학교에서 일본 신문을 통해 황장엽의
망명이유서를 읽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 그리고
남북의 형제애 회복, 북한의 사상적 국가적 실패, 자기
인생의 실패를 시인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73살의 이 생애의 마감을 앞둔 노인이
마지막으로 민족과 그의 나랏사람을 위해 인생을 던짐을
보았다. 그것은 망명도, 귀순도 아니다. 문익환 선생이
70이 넘어 휴전선을 넘었듯이, 김구선생이 또 그런 나이에
38선을 넘었듯이 바로 그런 민족애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감동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이전에도 북한을 다녀온 사람의 입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황장엽 같은
북한체제의 핵심이 넘어왔다는 것은 북한의 식량난이, 그
체제의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 내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한 것이
민족의 통일이고, 민족국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것이 내 삶의 목표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과 북이 엉망이다. 남은 천문학적인 부정부패사건이
터졌고, 거기에 부정부패척결을 내세운 김영삼 정권의
핵심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나라와
민족을 망쳤고, 그들은 대원군처럼 망국노이다.

  점심도, 저녁도 굶고 금요기도회에 갔다. 나는
북한동포와 민족을 위해 공동으로 기도하자고 했다.
참석한 사람 모두와 함께 기도한다. 나는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마루바닥에 꿇어 엎드려 절실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매달렸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을 살려주이소. 우리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이소. 아부지, 살려주이소.
용서해주이소......살려주이소... 형제자매들이 다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 뜻과 정성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으니,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겠으니 이 민족을 용서해 주이소.
살려주이소. 이대로 가다간 다 망합니다. 100년전 같이 또
망합니다. 아버지....”

  성령의 강력한 힘이 수련회의 그 밤처럼, 세례받은 날의
밤처럼, 내 몸을 온통 사로잡고 나의 기도를 도우신다.
나는 꼬꾸라져 온 몸을 요동치며, 혀는 휘말려 울부짖는
소리를 낸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도저히 의자에 앉을 수
없어서 기도실의 바닥에 드러눕는다. 내 의지로 내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온 몸이 비틀리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군다. 눈물이 쏟아져 얼굴이 뒤덤벅이 된다. 한참 동안
성령이 나를 이끄셨다. 시간이 흘렀다.......

  기도를 마치고 이제 한국에 돌아갈 결심을 굳혔다. 3월
15일 무렵 한국에 돌아갈 것이고, 북과 남이 형제애로
서로 교통하고 화합하고, 하나님의 품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하루한끼안먹기운동’도 그러한 방법이 될 것이다.
북한 동포의 고통에 동참하여 고통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하루 한끼 안 먹고 그 돈으로 북한의
어린이에게 달걀과 바나나를 사주자. 이것은 아주 큰 일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일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자.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드려야 한다. 북한 동포를 사랑한다는
것,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귀중한 일부를 떼어내
나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루 한끼, 북녘동포의 고통을
나누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말고, 민족을 말하지 말고,
사랑을 이야기 말자.


1997년 2월 16일 일요일

  3월중에 한국에 돌아가자. 그리하여 통일건국과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나누기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깊은, 긴 역사를 바라보는 운동을
전개하자.
  먼저 해야 할 것은 ‘통일건국을 위한 북한 동포와의
형제애 나누기’, ‘통일건국을 위한 동포애 나누기
운동’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한끼 굶는 운동, 두끼
먹기 운동이다. 한 민족 형제자매인 북녘의 사람이
영양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는 상태에서 남쪽 사람들이
호식하고 또 방탕하게 살아간다면 통일의 기본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두끼를 먹고 그 한끼 분을 북녘사람을
위해 지원한다. 특히 어린이에게 지원해야 한다. 여러
사정으로 두끼로 버틸 수 없는 사람은 한끼 분을 금품으로
지원하도록 운동을 벌인다.
  이 운동은 단지 북의 사람을 돕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사람들의 기본 사고 방식과 생활패턴(술, 담배,
방탕, 환락)을 바꾸는 운동이고 통일건국의 기본 자세와
주도세력을 확보하고 키우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도운동이고
사랑나누기운동이다.
  ‘통일건국을 위한 민족애 나누기 운동’은
‘통일건국을 위한 재단만들기 운동’으로, ‘통일건국을
위한 민족사회개혁운동’으로 확장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충실한 씨알만이 썩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기도와 희생과 사랑 그리고 비전과 열정과 전략으로
무장된, 작으나 힘있는 움직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운동이 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했듯이 희생을 통한 기도와 사랑운동은 2천년 전
예수님이 하신 바로 그 일이고 또한 2천년이 지난 지금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가 전개해야할 운동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힘과 우리 인간의 모든 힘을 하나로 합하는
방법이 ‘헌신을 통한 기도와 사랑’이 아닐까.
  이 세상에 의미있는 모든 것은 20-30%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은 그러한 도전자, 비전의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내가 하려고 하는 운동은
20-30%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남과 북을 통틀어
민족사회 전체에 절실한 필요성이 있으며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한 나의 기도가 있다면 능히 성공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그 사랑하심 그 방식 믿고
담대히 나아가자.


1997년 2월 18일 화요일

  앞이 보이지 않을 때나 마음이 흔들릴 때나 벽이
가로막고 있을 때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이를 돌파하는 좋은 방법은 없다.
  몇 일간 일찍 한국에 돌아가려고 한 것이 흔들렸지만
성령의 지시대로 예정대로 3월 15일경 한국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통일건국을 위한 민족애나누기운동’을
전개하자. 이것은 매월 첫째 일요일에 금식하는 것이고,
이에 맞춰 북한 동포를 도울 기금, 지원금을 모금하는
것이다.  


1997년 3월 7일 금요일

   지난 한 주간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어 갔다. 하나님
아버지의 덕이라 생각하고 금요기도회 시간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직
세상에 대한 지식도 지혜도 물질적인 능력도 의지력도
약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는
그 마음이 생겨나 나를 이끌어 주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께 저의 자식문제로 투정할 때나,
하나님 아버지를 의심할 때나, 믿음이 약할 때나 항상
기도를 받아주시고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믿음, 하나님과 저를 연결시키는 끈이 끊어질
때 저는 곧 지옥으로, 나락으로 떨어짐을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단련시켜 주십시요.
  잠룡이 물 속에서 단련되듯, 물 속에서 그 고통 속에서
인내 속에서 여의주를 만들고 철갑같은 비늘을 만들듯 물
속에서 저를 단련시켜 주십시오. 아버지, 저는 그 물이
눈물, 땀물, 핏물임을 압니다. 제가 쏟아내는 눈물과 피와
땀이 많으면 많을수록 저는 더욱 강하게 될 것입니다.
개울에 큰 고기 없고 바다에 큰 고기가 살 듯이, 아버지
제가 흘리는 눈물과 피땀이 바다와 같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덩이같이 되었듯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눈물없이 되지 않듯이, 십자가의 그 고통을 예수님이 달게
받았듯이, 저도 저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오니
눈물과 피와 땀이 바다와 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다와 같이 눈물과 피땀 속에서 저를 단련시켜
주시옵소서. 4년만에 단련시켜 주시옵소서. 아니 바울이
그랬듯이 3년 동안 단련시켜 주시옵소서.”

  나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곧
나의 십자가를 내가 짊어지는 것이고 하나님 뜻대로 내
인생을 사는 것이 된다. 앞날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드리는 나의 간구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하신다. 나는 눈물을 쏟으며 예수님의 고통을 느낀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요동치면서 나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나는 심령을 다진다.

  3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고 기쁘게 피땀을 쏟자. 내가
살아 이루는 것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야
하고, 내가 살아가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하고, 내가 살아 있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인생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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