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첫째로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물은 교회를 의미하고, 갈릴리 바다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최후 심판이 있기 전 까지는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고 있다는 점을 본 비유는 말하고 있습니다.

본 비유의 말씀이 교훈하는 두 번째 교훈은 의인과 악인이 현재는 한데 어우러져서 살아가지만, 그 언젠가는 구별되어서 분리되고 격리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구별도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구별입니다.그 영원한 구별이 있는 날을 성경은 최후의 심판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최후의 심판이 없기를 희망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날은 분명히 있습니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할 것 같으면 의인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악인은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 그러면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그 판별 기준은 무엇입니까?

마태가 말하는 의의 개념은 믿음과 행위 양면을 다 강조하는 의의 개념입니다. 마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은 믿음만으로, 혹은 행위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로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말하는 의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물이면서도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는 의의 행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면 의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악을 행한다면 이신칭의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의인이지만, 마태의 관점에서는 의인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마태에게 있어서 의인은 누구입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세상 가운데서 그 의를 힘입어 의로운 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쳐 놓은 그물에 걸려 들어 있는 고기들이 교회 안에 들어 와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모두 의인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이방인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의인과 악인의 혼합체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날, 하나님이 그물을 끌어 올려서 고기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할 때에 좋은 고기로 남아 있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라는 말입니다.


켐연장

2017.10.11 05:49:31

2017년 10월 1일 주일예배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001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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